그 무엇도 허영을 이길 수는 없다

머니투데이 박정태 경제칼럼니스트 2012.11.2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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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의미를 찾아서 <20>

그 무엇도 허영을 이길 수는 없다


제시 리버모어, 이 칼럼에서 꼭 한 번 다뤄보고 싶었던 인물이다. 20세기 초 월가를 주름잡았던 타고난 트레이더. 폭풍 같은 매도 공세로 투자자들을 떨게 만들었던 시세조종의 대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위대한 투자자” 운운하기도 하지만 그렇지는 않고, 다만 주식시장을 무대로 몇 번이나 기막힌 반전 드라마를 보여준 대단한 뉴스메이커였던 것은 사실이다.

리버모어의 이름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07년 패닉 때였는데, 당대의 은행가 J.P. 모건이 그에게 주식 매도를 멈춰달라고 요청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그가 이때 공매도로 단 며칠만에 번 돈은 100만 달러(현재가치로 3000만 달러)에 달한다.



덕분에 리버모어는 “월가의 큰곰”이라는 별칭까지 들으며 일반인들에게도 약세 투기자로 널리 알려졌고, 1920년대에는 주식시장이 이유 없이 급락하면 그의 매도 공세 때문일 것이라는 루머가 퍼지곤 했다. 그랬으니 1929년 주가 대폭락 이후 그에게 온갖 비난이 쏟아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소년시절 칠판으로 된 시세판에 주가를 적는 일을 했는데, 숫자감각과 기억력이 뛰어나 주가를 잘 읽어냈다. 한마디로 주가 차트를 머릿속으로 그려내 일찌감치 모멘텀 투자를 했던 것이다.



평생 주식시장을 떠나지 않았던 그는 부침을 거듭하며 공식적으로만 네 번 파산했다. 1934년 3월 마지막으로 파산했을 때 그의 자산은 18만 달러, 부채는 225만 달러에 달했으나,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렇게 썼다. “리버모어는 앞서 세 차례 파산했을 때처럼 재기할 것이다. 그는 세 번 모두 원금과 이자까지 전부 상환했다. 한 번 더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리버모어는 낙엽이 거의 다 떨어져가던 늦가을 이맘때, 그러니까 1940년 11월 28일 오후 5시 33분 뉴욕 시 5번가의 셰리 네덜란드 호텔 휴대품 보관소에 들어가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32구경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아내에게 남긴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모든 것들이 내게 등을 돌려버렸어. 싸우는 데도 지쳐버렸소. 나는 실패자야.”

그는 왜 이렇게 허망한 종말을 맞았을까? 지금도 투자의 고전으로 꼽히는 에드윈 르페브르의 ‘제시 리버모어의 회상”이나 죽기 직전 그가 직접 쓴 ‘주식 투자의 기술’을 읽어보면 그의 현란했던 트레이딩 솜씨와 극적인 성공담, 투자자의 폐부를 찌르는 경구(警句)들로 가득 차있다. 나 역시 이 책들을 번역하며 리버모어라는 인물에 푹 빠져들었지만, 그럴수록 정작 궁금해지는 것은 그의 실패 원인이었다.


죽는 순간 자신을 향해 실패자라고 외쳤던 이유, 내가 보기에 그것은 허영 때문이었다. 리버모어는 방탕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사치스럽게 살았다. 방 12개짜리 호화주택에 맨해튼의 고급 맨션, 여기에 여름별장과 겨울별장이 있었고, 길이 90미터의 고급 요트를 타고 가다랑어 낚시를 즐겼으며, 전용열차를 이용해 팜비치의 휴양지를 오갔다.

여성 편력도 심해 여배우 등과의 염문이 끊이지 않았고,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해 실종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런 사치와 방종의 밑바탕에는 언제든 돈을 벌 수 있으므로 마음껏 써도 된다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리버모어가 나락으로 빠져든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시장을 이기고 싶어했다. 그러나 시장을 계속해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번 기회를 잡으면 큰돈을 벌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걸었다. 그는 통상 10%의 증거금만 갖고 거래했다. 가진 돈의 10배까지 매수하거나 공매도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과도한 레버리지의 덫에 걸려버렸던 것이다.

시장을 마음껏 휘어잡고 싶은 욕망, 모두가 우러러보는 월가의 제왕이 되고 싶다는 야심, 그것이야말로 리버모어를 죽음으로 몰아간 진짜 허영일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력도 있어야 하고, 냉정한 판단도 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 하지만 자기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허영심을 절제하지 못하면 어떤 성공도 붙잡을 수 없다. 리버모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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