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 수지는 내열성이 있는 비스말레이미드와 트리아진을 반응시켜 만든 합성수지의 일종이다. 반도체나 LCD가 아니고 소비자에 노출되는 부품도 아니지만 그 역할은 가볍지 않다.
세계 BT수지 물량 중 절반을 일본 미쓰비시가스케미컬(MGC)이 공급한다. 미쓰비시는 11일 지진 이후 후쿠시마를 비롯, 일본 내 두 곳 공장 조업을 무기한 중단했다. BT 수지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공급망)을 타고 애플의 제조기지인 중국 폭스콘까지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우려를 자아냈다.
애플 주가는 이에 속절없이 밀려 4.46% 하락 마감했다.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일본의 원전 사태가 자존심 강한 애플마저 추락시킨 셈이다.
일본산 BT수지는 대만의 킨서스나 유니마이크론 등이 받아 집적회로(IC)를 만드는 데 쓴다. 대만반도체제조(TSMC)는 이 IC로 반도체를 만들고 ASE, SPIL 등 후공정 업체들이 이를 칩셋으로 패키징한다. 한국 기업도 IC와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이 공급망의 한 축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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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든 반도체는 마침내 폭스콘과 같은 중국 스마트폰 공장으로 옮겨져 제품에 탑재되고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결국 MGC의 조업 중단이 장기화되면 반도체 기업들이 보유재고로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닥친다.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바클레이 애널리스트 앤드류 루는 "스마트폰 부품업체들이 BT수지 재고를 1달~1달 반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미쓰비시가 2~3개월 생산을 못할 때 스마트폰, 일반 휴대폰 등 통신기기에 쓰이는 IC의 전세계 출하량 절반 정도가 영향을 받는다"고 추정했다.
기술자문기관 레드테크는 미쓰비시의 BT수지 공급이 줄면 대만 반도체 조립업체 ASE와 SPIL은 물론이고 미국 질링스, 알테라, 퀄컴까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韓·대만, '일제' 부품 완전대체 어려워= 한국, 대만 등의 일부 기업은 일본이 공급하지 못하는 부품의 대체 수요가 몰려 반사이익을 볼 수도 있다.
소시에떼제네랄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는 제품공급에 눈에 띄는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한국, 대만 등에 일본기업을 대신할 '백업' 공급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재앙 수준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우선 회사별로 수지의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MGC와 거래하던 기업이 히타치로 공급처로 옮기자면 기판 디자인을 새로 해야 하는 등 시간과 추가비용이 적잖게 든다.
일본산 BT 수지가 고급 물량을 장악한 것도 변수다. FT는 한국 대만 등에서 대체품을 만들지만 완전한 보완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적어도 현재로선 '일제'가 사라진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