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동물적 본능과 부동산시장

머니투데이 이용만 한성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2011.01.1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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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동물적 본능과 부동산시장


경기변동은 인간의 심리적 변화에 의해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인스(Keynes)는 바로 그 인간의 심리를 경제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1936년에 발간된 그의 저서 '고용과 이자, 그리고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에서 기업가나 가계의 심리가 투자나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서 이를 동물적 본능(animal spirits)이라고 불렀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비이성적인 본능에 따른 행동이 경기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력한 기업의 CEO가 부부싸움을 한 뒤 출근을 하면, 세상을 비관적으로 판단하여 대규모 투자계획을 기각시키게 되고, 이런 비관적 의사결정이 시장에 파급되면서 경제 전체가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인스 이후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심리가 안정적이라고 보았다. 비이성적인 본능에 따라 행동할 여지가 많지 않다고 본 것이다. 설령 인간의 심리가 다소 불안정하더라도 이것이 경기변동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기 때문에 무시해도 된다고 보았다.



197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한 행동경제학(behavior economics)은 이런 시각에 반기를 들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비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여러 분야에서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심리변화가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경기가 롤러코스터(roller coaster)를 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인 애커로프(Akerlof) 교수와 실러(Shiller) 교수는 2009년에 출간한 '동물적 본능'(animal spirits·국내에서는 '야성적 충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출간됐다)이라는 저서에서 부동산시장을 동물적 본능에 의해 극단을 오가는 대표적인 시장이라고 보았다. 이들에 따르면 부동산시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confidence)이나 공포(fear)가 시장을 롤러코스터로 만드는데, 이때 성공이나 실패의 이야기들이 유포되면서 시장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간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주택가격이 상승할 때는 자신감이 또다른 자신감을 가져와 시장이 과열되는데, 여기에 그럴싸한 '주택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시장에 유포되면서 시장은 더욱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주택가격이 하락할 때에는 가격하락에 대한 공포가 또 다른 공포로 연결되어 가격이 급락하게 되는데, 여기에 그럴듯한 '주택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유포되면서 시장은 파국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간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을 살펴보면 애커로프 교수와 실러 교수의 진단이 나름대로 설명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에 들어와 주택가격이 상승한 데는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그리고 주택공급 부족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에까지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시장이 과열된 데는 지나친 자신감이나 부동산불패 신화와 같은 스토리가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슈퍼스타 도시' 이야기다. 서울은 슈퍼스타 도시이기 때문에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08년 이후 정반대 상황이 전개되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유동성이 부족해졌고, 주택공급이 과잉인 상태라서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에다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인구감소로 주택가격은 폭락할 것'이라는 스토리가 유포되면서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경기변동의 양 극단에서 지나친 자신감과 공포, 성공과 실패의 스토리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한 심리상태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어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시장을 지배하던 부동산시장 필패의 신화는 올해 들어 언제 그랬냐는 듯 언론에서 사라진 것같다. 이것만 놓고 보자면 부동산시장은 침체의 늪을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런 상태가 유지될 것인지, 다시금 과거의 경험을 망각한 채 부동산시장 불패의 신화가 부활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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