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셋넷 낳으면 아파트를 싸게 줘라

머니투데이 홍찬선 부국장대우 겸 금융부장 2010.07.0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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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칼럼]출산율 2.04로 높이기②

아이를 셋넷 낳으면 아파트를 싸게 줘라


“흥부네 집 자동차는 티코”.

지금은 대학교 2학년인 큰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9년쯤 전이다. 학교에서 ‘우리 집 신문 만들기’ 과제를 내 주었는데, 큰 딸이 만든 신문의 톱기사 제목이 바로 “흥부네 집 자동차는 티코”였다.

그 때 살던 집은 양재동에 있는 26평짜리 빌라. 딸 둘과 아들 둘, 아이 넷과 우리 부부, 이렇게 6명은 방 2개짜리 좁은 집에서 흥부처럼 살았다. 지금까지 한번도 집이 좁다거나 차가 작다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있는 마음 큰 첫딸이지만,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의 무의식엔 뭔가가 자리했던 듯 하다(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다).



그 뒤 살림살이가 좀 나아져 대치동의 45평짜리 빌라로 옮겼다. 이사하던 날 집이 너무 넓었다. 위의 딸 둘에게 방 하나를 주고, 아들 둘은 우리 부부와 함께 지내다 아들 둘에게도 방 하나를 주었으니 별천지를 만난 것 같았다(아직도 빌라를 벗어나지 못하고 앞으로 8년은 더 살아야 한다).

차도 티코에서 마티즈II로 업그레이드 됐다.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6명이 다 타려면 무지 좁지만 그래도 뾰족한 수가 없다. 애가 넷이라고 하면 자동차는 당연히 9인승 승합차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필요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충족되는 게 아닌 것이 현실이다(경찰에 한번 걸린 적이 있는데, 한 가족이라고 했더니 봐주는 혜택은 봤다).



그래도 우리는 형편이 나은 편일 것이다.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고 외식마저 1년에 생일날만 달랑 6번 할 뿐이지만, 강남에서 내 집과 내차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이가 넷이면 이렇게 사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넷 키우면서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둘을 키우면서 장만하는 것보다 2배의 2배는 더 힘 드는 일. 버는 것을 대부분 교육비와 음식비로 씀으로써 엥겔계수가 높아 내 집은, 그것도 아이 한명 당 방 하나를 주는 집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도 출산율이 1.15명으로 떨어진 이유 가운데 가장 큰 이유 두 가지는 바로 교육과 내 집 마련이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다자녀 아파트 분양우대정책=실효성 없는 전형적 탁상공론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했는지 몇 년 전부터 아이가 3명 이상인 다자녀 가구에게 아파트 분양 때 우대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실효성이 거의 없다. 다자녀 가구가 아파트 분양에서 우선권을 받으려면 무주택, 즉 집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집이 없어 전세 살아본 사람들은 아이가 있을 때 전세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것이다. 게다가 애가 셋, 넷이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도 2년마다 새로 구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지옥이 따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자녀 가구는 어쩔 수 없이 좁더라도, 그리고 아파트가 좋다는 것을 알지만 할 수 없이 다가구주택이나 연립주택을 산다. 애가 많으면 넓은 아파트를 사기 어려운 비극의 탄생이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다자녀 가구에게 아파트 우선권을 주려면 무주택자여야 한다는 조건을 없애야 하는 이유다. 게다가 아파트를 분양받더라도 거기에 입주에 사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굳이 분양우선권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분양보다는 임대료가 싼, 장기임대아파트를 제공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분양을 선택할 경우에도 장기-저리로 분양대금을 대출해주어야 할 것이다. 예금 금리를 우대해주는 상품은 다자녀 가구에겐 약만 올리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다자녀 가구가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여건 마련해줘라

승합차도 다자녀 가구에겐 대폭 할인해주는 방안을 도입할 수 있다. 다자녀 승합차 할인은 정부가 나설 것도 없이, 자동차 회사들이, 아니면 뜻을 함께 하는 기업이나 부자들이 나서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방안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거액의 홍보비를 들이지 않고도 좋은 일 하면서 홍보도 할 수 있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30년 전, 산아제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때는 셋째에 대해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았다. 둘째 셋째가 쌍둥이면, 몇 분 뒤에 나오는 셋째는 의보대상에서 제외되는 비인간적 조치까지 도입했다. 그만큼 사람의 인식을 바꾸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

애 많이 낳는 게 무슨 벼슬이라고 아파트 분양 우선권을 주고 승합차를 대폭 할인해주느냐고? 1.15까지 떨어진 출산율을 2.04로 끌어올리려면 최소한 그 정도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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