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유치, MB 외교의 완벽한 승리

피츠버그(미국)=송기용 기자 2009.09.26 02:17
글자크기
"2010년에 G20 정상회의를 한국이 유치할 수 있도록 추진하세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던 지난 2008년 11월. 제1차 워싱턴 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한 이명박 대통령은 사공일 G20 기획조정위원장(당시 대통령 경제특보)을 불러 이같이 지시했다.

G20 유치, MB 외교의 완벽한 승리


서방 선진국 중심의 G8 체제가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 질서가 G20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현실을 현장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막강한 글로벌 인맥..사공일 위원장 일등공신
사공 위원장은 각료들로 구성된 대통령 직속 G20 기획조정위원회를 설립했고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세계 각국을 돌며 유치활동에 나섰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장관 등을 역임한 사공 위원장의 거미줄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래리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프랑스 장 다비드 레비트 엘리제궁 외교고문 등과 접촉하면서 한국의 G20 유치에 차근차근 다가갔다. 이 대통령이 수시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케빈 러드 호주 총리 등과 전화 통화하며 측면 지원한 것도 큰 힘이 됐다.



이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에서 발휘한 탁월한 리더십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은 워싱턴 회의에서 1년간 무역 및 투자 장벽 동결(스탠드스틸 Standstill)을 제안해 보호무역주의 확산을 저지했고, 런던 회의에서는 외환위기 당시 경험을 공유해 부실자산 처리에 대한 국제원칙을 도출하는 데 기여했다.

2010년 유치, 전략적 선택도 주효
2009년을 건너뛰고 일찌감치 2010년 개최로 방향을 잡은 것도 올바른 선택이었다. 한국이 G20 정상회의의 모태인 G20 재무장관 회의의 2010년 의장국이라는 명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2009년 G20 재무장관 회의 의장국인 영국이 4월에 제2차 런던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도록 적극 지원했다.

제3차 G20 정상회의의 미국 피츠버그 개최에도 힘을 실어줘 취임 초기 가시적 성과에 목마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배려에 "다음은 한국"이라며 2010년도 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를 적극 후원했다.


G20 유치, MB 외교의 완벽한 승리
일본, 호주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2,3차 G20 회의를 유치하려다 실패한 것도 우리의 전략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러드 호주 총리는 각종 국제회의에서 "내년에는 한국에서 개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등 한국 유치에 앞장섰다.

프랑스의 G14 체제 구축 시도 등 시련 겪어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 경제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수습되면서 역설적으로 G20 체제의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 졌다. 피츠버그 3차 회의 이후 G20 정상회의를 계속 유지할 지가 불확실해 진 것.

게다가 세계 질서가 G20으로 재편되는데 대한 일부 국가의 반발도 치열했다. 금융위기 진앙지인 미국은 한국, 호주 등 맹방이 포함된 G20을 통해 주도권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일본 등 나머지 서방 선진국은 G8 체제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주력했다.

특히 미국 독주에 반발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G20을 폐기하고 G8 회원국에 브릭스(BRICs) 국가를 포함한 G14 체제를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G20 정상회의가 세계 경제위기 극복에 공헌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으면서 이 같은 시도는 무산됐다. G20 무력화에 앞장섰던 프랑스도 G14 주장을 철회하고 2011년 G20 정상회의를 유치하는 실속을 챙겼다.

캐나다에 4차 회의 양보, 5차 회의 선택
이처럼 한국의 유치는 확정적이었다. 다만 문제는 시기였다. 정부는 당초 2010년 4월 개최를 목표로 했다. 하지만 내년 4월 초에 오바마 대통령이 주관하는 핵안전 정상회의, 6월에는 캐나다에서 G8 정상회의가 열리는 등 주요국 정상이 참여하는 각종 회의가 집중됐다.

결국 정부는 캐나다에 4차 G20 정상회의 개최를 양보하고 11월에 제5차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덕분에 6월에 개최될 G20 정상회의에서 캐나다와 함께 공동의장을 맡는 실리를 챙겼다. 또 이 대통령과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가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4차, 5차 회의 개최를 발표해 G20 유치를 못 박았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내년 G20 정상회의 유치는 신(新)경제 질서 재편의 주도권을 놓고 각국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룩한 완벽한 외교의 승리"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