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의 잘못된 관행들

더벨 황은재 기자 2009.08.0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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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니즈월 무시…공모 없는 공모발행

이 기사는 08월04일(09:20)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신평사는 대서방?=롯데그룹 계열사 가운데 한 곳이 8월말에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무차입 기업이라 유효 신용등급이 없다. 이 회사의 신용등급은 A+가 될 것이라고 한다. 롯데그룹의 지원 여력과 동종업계의 신용등급을 감안해 채권시장이 A+ 정도로 보는 것인지 아니면 신용평가사들이 미리 귀띔을 한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발행자가 원하는 신용등급이 A+라는 이야기일 뿐일까.



신용등급의 사전 유포는 비일비재하다. 사실 시장 관계자는 물론 취재기자조차 무감각해진지 오래다. 부끄러운 경험이긴 하지만 증권사들의 투자제안서(IM)만 보고 회사채 발행관련 기사를 썼다가 해당 회사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 "신용평가사에서 A+로 올려주기로 했지만 아직 등급 발표가 된 건 아닙니다"

#만리장성 넘기 '참 쉽죠'=앞서 언급한 회사채는 신용등급도 아직 받지 않았고, 이사회 결의도 받기 전이며 유가증권신고서 제출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7월말부터 기관투자가를 상대로 투자 모집에 들어갔다. 회사채 발행 절차는 완전히 무시된다. 절차의 문제를 떠나 선투자자 모집, 후발행 현실은 아직 국내에서 투자은행은 멀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게 한다. 이런 행위는 실정법 위반이다.



자본시장법은 증권회사가 회사채 발행과 유통 업무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차이니즈월(ChinessWall) 의무를 부여했다. 사전에 투자 수요를 조사할 수도 없으며 증권사 내부 부서간의 정보교류도 제한된다. 이 회사의 회사채 발행 과정을 보면 회사채 주관·인수 부서와 채권 유통부서간의 차이니즈월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지 6개월에 불과해 과도기에서 나타나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차이니즈월을 없애기 위한 여론 형성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애초부터 지킬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공모 회사채는 없다=다시 앞선 채권발행 사례를 보자. 유가증권신고서가 들어가기도 전에 투자자는 결정된다. 몇몇 기관투자자들이 이 회사채를 매입할 것이다. 공모 회사채 발행을 위해 신고하는 유가증권신고서는 어느 증권사의 말단 직원이 작성해 제출하는 서류에 불과하다.


투자자가 이미 정해졌기에 공모 청약이라도 일어나면 큰 일이 된다. 한 증권사의 DCM담당자는 "지점에서 회사채 청약하면 담당 직원이 절차도 모를 뿐더러, 설령 청약을 받았다가는 DCM본부장까지 쫓아가 청약을 철회해달라고 해야 할 상황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보통 주식의 경우 청약기간이 이틀이지만 회사채는 단 하루인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공모 회사채는 있지만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유명무실한 청약 앞에 개인투자자만 손해를 보고 있다. 개인의 회사채 투자는 금융위기 속에 자금이 목마른 기업들을 살리는 역할을 했지만 그들이 누려야 할 이익까지도 증권사에게 헌납했다. 작게는 20~30bp, 많게는 50bp 이상을 증권사에 수수료 명목으로 넘겨줬다. 청약만 돼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증권사는 수십억원의 인센티브를 챙겼다고 한다. 이런 꼴 안 보려면 회사채 펀드에 가입하라고 하지만 회사채 펀드는 고사 직전이다.



#회사채 유통 100억단위, 누가 만들었나=회사채 펀드를 살리기 위해 채권운용본부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한 채권운용본부장이 "국내 회사채 거래 단위가 100억원이기 때문에 회사채 펀드를 살리는데 장애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자본시장법, 그 이전 법이었던 증권거래법 어느 구석에도 회사채를 100억 단위로만 매매하라는 조항은 없다. 장외 채권시장에서 시장 참가자들끼리 '관행'처럼 100억 단위로 거래해왔을 뿐이다. '관행'이기에 법보다 더 익숙했을 법도 하다.

회사채 시장에 만연한 관행들 가운데 몇 가지만 추렸다. 일부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도 있다. 회사채 시장 참가자들도 시장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선돼야할 과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빠른 시간 내에 해결되긴 힘들어 보인다. 이를 바로잡고 감시해야하는 감독당국의 눈도 어딘가 초점이 흐려진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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