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환율' 소비패턴 바꾸나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도병욱 기자 2009.03.0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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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둘째 아이를 본 은행원 A씨는 요즘 마트 가는 것이 두렵다. 첫째를 키울 때부터 써왔던 일본산 B사 기저귀 가격이 환율에 따라 무서울 정도로 오르고 있는 탓이다.

지난해 10월 벨트형 4팩(260개)에 8만9000원이었던 게 최근 10만8000원으로 올랐다. 국산 기저귀에 비해 조금 싼데다 흡수력이 좋고 피부발진이 적어 젊은 주부들에게 인기가 높은 제품이다. A씨는 "환율이 계속 상승하면 기저귀 가격도 더 오를텐데 B사 기저귀를 계속 쓸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 기업에 근무하는 B대리도 한 달만에 부인과 함께 장을 보러 갔다 깜짝 놀랐다. 7개월된 아이에게 이유식처럼 먹이는 바나나 가격이 100g당 170원에서 240원으로 30% 가량 오른 탓이다. 오렌지 역시 개당 800원으로 지난해 400원에 비해 100%나 올랐고, 파인애플도 배나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바나나는 수입이 대부분인 데다 보관이 어려워 원/달러 환율의 영향을 거의 실시간으로 받는다. 원/달러 환율이 1600원을 위협하고 있는 현재 "더 이상 바나나를 '값 싸면서도 영양만점 과일'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어졌다"고 B대리는 푸념했다.



하늘을 뚫을 기세로 오르고 있는 환율에 장 보러 가기가 무섭다는 호소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며칠 안으로 수입 가전제품과 주방용품 등의 가격표를 전면 교체할 것으로 알려졌다. 환율이 더 오르면 마트 갈 때 마다 '악'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 예비 신혼부부에게도 고환율은 악몽이다. 4월 18일 결혼 예정인 C씨는 신혼여행 스트레스에 잠을 설치고 있다. 한달 전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안팎을 오르내릴 때 여행사와 몰디브 5박 6일 상품을 계약했다.

하지만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보고 계약금 100만원만 지불하고 지금껏 결제를 미뤘는데, 그 사이 환율은 200원 가까이 올라버렸다. 그 때 결제했다면 700만원만 납부하면 됐지만, 이제 800만원을 내야 한다. 그렇다고 신혼여행을 포기하기엔 이미 지불한 계약금이 가슴에 걸린다.


# 오는 4월 해외연수를 준비 중인 D씨에게도 환율은 '공포의 대상'이다. 회사에서 해외연수 대상자로 선택됐지만, 나날이 오르는 환율에 언제 환전을 해야할지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환전 스트레스와 함께 연수 자체가 취소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들려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다.

D씨는 "회사에서 경기침체에 환율까지 널뛰기 하면서 해외 출장비도 되도록 줄이고 있는 분위기"라며 "출장을 가도 국내 항공사가 아니라 저가의 외국항공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원화가치 급락하면서 취미생활도 쉽지 않아졌다.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취미로 삼고 있지만, 인기를 얻고 있는 DSLR 카메라용 렌즈 가격이 한 두달 사이에 20% 이상 올랐다. 카메라 렌즈와 악세사리를 판매하는 남대문 상가 분위기도 전과 달라졌다. 비공식 루트를 통해 들여와 판매되는 이른바 '병행수입품' 렌즈 가격이 원/엔 환율 상승으로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

고급 렌즈 가운데 인기 제품이었던 D사의 한 렌즈 가격은 지난해 10월 130만원이었지만 4개월만에 153만원으로 치솟았다. 같은 회사의 망원렌즈 가격도 25만원 오른 95만원이었다. 그런데도 점포 주인들은 '사기 싫으면 관두라'는 분위기다. 몇 주 뒤에 팔면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한 직원은 "지금 렌즈가격은 원/엔 환율이 1200원일 때 기준으로 매겨지는 것"이라며 "3월 말이 되면 1400원 내지 1600원 기준으로 가격이 매겨져 지금보다 10% 이상 비싸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달러가 엔화보다 상황이 나아 미국에 수출된 물건을 다시 들여와 판매하는 곳도 있다"고 귀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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