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문에 채용계호기 없어도 모집
서울-대기업, 지방-중기 양극화도
"갑자기 늘어난 인턴 채용 때문에 대학가에는 '인턴고시'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정작 바라는 것은 인턴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직장인데 말이죠."
올해 초 대학을 졸업한 K씨(27)는 울며 겨자먹기 심정으로 인턴을 준비하고 있다. 정규직원 채용 공고보다 인턴모집 공고가 더 자주 눈에 띄는 요즘 구직자들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간다.
정작 필요한 것은 일자리(채용)인데 인턴(연수)만 늘리다보니 수급에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선 차라리 비용을 조금 더해 신규채용을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업도 '끙끙'="인턴사원의 회사·업무지식 수준이 부족하다"(94%) "인턴사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데 부담을 느낀다."(54%)
한 기관에서 종업원 1000명 이상인 업체 1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을 보면 인턴십의 활성화를 막는 걸림돌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회사에선 인턴을 정규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의 경계선에 있는 존재로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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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산하 공공기관과 재계에 인턴 채용을 주문하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은 이유도 여기 있다.
특별한 채용이유나 목적이 없는 기업·기관에서 인턴을 채용해봐야 맡길 수 있는 일은 한정된데다 여기에 따른 비용부담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인턴의 양극화 가능성도 지적된다. 서울에 있는 소위 대기업이나 잘 알려진 은행, 정부부처에는 인턴이 몰리는 반면 지역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인턴인력부터 빈곤하다.
◇해외 인턴은=미국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는 유학생 A씨는 지난해 여름방학 회계법인 '딜로이트'에서 10주간 인턴으로 근무했다. A씨는 딜로이트 정규직 1년차와 동일한 수준의 급여를 받았다. 급여수준만큼 업무강도도 셌다.
A씨는 회계법인의 일반직원들이 수행하는 기업들의 재고자산이나 현금보유액 등을 파악했다. 그후 채용 제안을 받아 1년간 남은 학기를 마친 뒤 딜로이트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미국 인턴십은 국내와 사뭇 다르다. 방학이 되면 미국 대학생들은 사력을 다해 인턴직에 덤벼든다. A씨처럼 대부분 회사가 인턴을 직원채용의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인턴 수료 여부가 졸업 후 직장을 좌우한다. 대학생들이 "인턴 모집을 앞두고 에세이를 쓰고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밤잠을 설쳤다"는 말을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공개채용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수시채용이 일반화돼 있다. 때문에 인턴 채용은 정규직 공개채용과 다름이 없다. 기업들은 대학성적표와 논술로 1차 심사를 거친 뒤 고강도 심층면접을 실시한다. 여기에서 선발된 학생은 '예비직원' 자격을 얻고 정규직원에 준하는 급여와 업무를 부여받는다.
3년 전 국내에 있는 외국계 은행에서도 인턴을 한 A씨는 "한국에선 서류 복사나 액셀작업 등 단순 업무만 맡겼다"며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접목하고 싶었으나 실망밖에 남은 게 없다"고 고백했다.
인턴십 활성화의 또다른 이유로는 '추천제'(recommendation)도 한몫한다. 한 기업에서 인턴을 마치고 추천서를 받으면 해당 기업은 물론 다른 기업에 취직할 때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기업들의 채용매커니즘은 추천과 수시채용으로 이뤄져 있어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긴 힘들다"면서도 "미국 인턴제도가 기업과 구직자 양쪽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