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나리들에게 휴가를 주자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9.01.1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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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의 여의도 편지]

# 국회의원들은 바쁘다. 제 시간이 없다. 밖에서 볼 땐 할 일 없는 한량(閑良)이지만 직접 보면 늘 바쁘다. (여기엔 싸우느라 보내는 '많은' 시간도 포함된다.)

우선 챙길 게 많다. 몸은 하나인데 찾는 곳이 여럿이다. 지역구 모임은 물론 각종 행사가 수두룩하다. 안 가면 당선된 후 변했다는 말이 돈다. 국회 회의 참석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반면 회의 중 잠시 짬을 내 지역구 행사라도 들르면 본연의 임무를 져버렸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래저래 욕 먹는다.

지인들과 식사 약속 한번 하기도 힘들다. 점심, 저녁을 몇 차례 뛰며 만나도 부족하다. 가족과 밥 한 끼는 이미 포기했다. 결혼기념일에 와이프와 근사한 레스토랑을 찾는 것은 '꿈'에 속한다. 한 초선의원은 최근 점심시간을 활용, 조촐한 식사로 결혼기념일의 의무를 다했다.



# 공부도 한다. 공부하지 않는 의원도 더러 있지만 실제론 '실력파' '노력파'들이 많다. 아침 7시께 출근해 밤 늦게까지 회관 사무실에서 자료를 뒤적이는 의원들도 제법 된다.

이동하는 차 안은 자료와 씨름하는 주된 공간이다. 의원들 차량 내부를 보면 검토하다 만 자료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옆자리에 누굴 태울 수 없을 정도로 자료를 쌓아 놓은 의원도 있다.

쟁점 법안을 검토하고 관계자들과 토론하는 것은 기본이다. 오찬과 저녁 식사 자리와 별도로 조찬 때 공부하는 이도 많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자기 생각의 잘못된 점을 수정하는 시간이다.


# 이런 의원 나리들에게 "휴가는 한번 가셔야죠"라고 하면 손사래를 친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항상 '그럴 때'가 아니었다.

1년 전엔 '정권 교체' 때문에 바빴다. 대통령 당선인이 직접 나서 '노 홀리데이(No Holiday)'를 선언했으니 오죽했으랴. 이후 '촛불' '쇠고기' 등이 휴가의 발목을 잡았다.

그나마 정부쪽은 낫다. MB(이명박 대통령)가 여름 휴가(그마저도 축소했지만)를 간 덕에 며칠이나마 휴가를 즐겼다. 하지만 여의도에 남은 이들은 단 하루를 못 쉬었다.

남의 선거(대통령 선거 경선, 본선)에 이어 자신들 선거(총선)까지 쉴 새 없이 뛰었다. 곧이어 촛불 등에 휘말렸다가 정기국회를 보내며 한해를 마쳤다. 여야 의원들 모두 비슷한 흐름을 겪었다.

# 요새 의원들을 보면 사실 지쳤다. '마음'은 있는데 좀체 '몸'이 말을 안 듣는다. 한마디로 피곤하다. 지난해 연말엔 "정기국회만 끝나면 무조건 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여야 가릴 게 없었다.

하지만 국회 일정이 늘어지면서 '꼬였다'. 골프 외유를 '감행'한 민주당 의원들도 있지만 이보단 "지금은 휴가갈 때가 아닌데 …"라며 눈치 보는 이들이 더 많다.

게다가 MB가 직접 나서 국회를 비판하자 다시 "2월 국회에서 쟁점법안을 처리한 뒤에 쉬지…"가 됐다.

물론 싸움만 한 이들에게 휴가를 주는 것은 못마땅하다. 그들은 충분히 욕먹을 만 하다. 그렇지만 체력이 고갈된 이들에게 좋은 입법을 바라는 것도 무리다.

그냥 2월 국회 때까지 그들을 쉬게 하자. 그래도 길게 보면 잠깐 휴식이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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