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사업 포기하고 말겠다"

머니투데이 이군호 기자 2008.10.1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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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성 악화ㆍ금융약정 난항
- 정부 제도개선은 기대 난망
- 벌처펀드의 등장을 원하나?


"지금과 같은 민자시장이라면 현재 추진중인 민자도로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헐값이 된 민자도로를 인수해 정상화한 뒤 되파는 벌처펀드(Vulture Fund)가 등장하겠죠. 이것이 정부가 바라는 민자시장이 아니길 바랄뿐입니다." 수도권일대 민자도로사업을 추진중인 A건설사 실무진의 푸념이다.

그는 현재 추진중인 민자도로의 실시협약을 끝낸 뒤 사업성을 분석해보니 실행률(실제투입비용/최초 공사예정금액)이 100%를 넘어선 것을 확인하고 망연자실했다. 실행률이 올라간 결정적인 이유는 자재값 인상이었다. 문제는 실행률 증가로 수익률이 급락하면서 프로젝트파이낸싱이 사실상 불가능해 졌다는 점이다. 경영진에 보고한 결과 '이대로라면 사업을 아예 포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결국 정부를 상대로 우선적으로 자재비 인상분을 반영해 줄 것과 통행료 인상 등을 요구했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국내 민자시장이 고사 직전이다.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도 있겠지만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의 폐지가 가져온 후폭풍이 결정적이었다. 여기에 민자사업 물량의 지속적인 축소로 건설업체간 과열경쟁이 불거지면서 수익률까지 급락했다.



특히 민자시장의 위기는 MRG 폐지와 수익률 급감으로 금융권이 민자시장에서 등을 돌리면서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MRG가 없는 1기 프로젝트인 안양~성남ㆍ송현~불로 민자도로와 광명ㆍ우이~신설경전철 등은 금융약정이 안 돼 사업 추진이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최근 금융약정을 완료한 평택~시흥 민자도로는 신디케이트론이 어려워 보증료를 합한 금리가 10%를 훌쩍 넘는 신용보증기금 자금을 브릿지론으로 끌어들였다.

또 최근 금융약정을 어렵게 성사시킨 민자도로도 신디케이트론이 불가능해지자 금융주간사인 모 은행은 자기자본 50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후순위채권과 에퀴티(Equity)를 나중에 조달한다는 고육지책이었다.


현재 사업이 본격화된 민자도로의 금융약정이 안 되는 이유중 하나는 MRG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금재조달을 할 때 정부와 이익을 절반씩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MRG가 없고 정부지원금도 최소화한 민자도로를 성공적으로 완공·운영한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사업자의 능력"이라며 "이 같은 사업에 대해서도 정부가 이익공유를 강요한다면 민자사업에 투자할 이유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와 함께 건설업계도 최근의 자재값 인상분을 반영해 총사업비를 변경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금융권의 민자시장 이탈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자재비 인상분이 총사업비에 반영되지 않고, 자금재조달관련 제도개선마저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건설업계와 금융권은 A건설사처럼 사업 포기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민자시장에서는 작년말부터 기존 사업자가 사업을 포기해 매물로 쏟아질 경우 이를 싼 가격에 인수해 정상화시킨 뒤 재매각하는 벌처펀드가 등장할 것이란 괴담이 돌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벌처펀드가 부실 민자도로를 인수해 재매각한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고위임원은 "민자도로나 부동산 등의 실물자산이 경기 침체나 사업추진 어려움으로 디플레이션될수록 부실자산처분 시장은 커지게 마련"이라며 "국내에서는 부동산보다 민자사업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와 금융권은 정부를 향해 SOS를 치는 한편 전향적인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SOC포럼 관계자는 "이미 건설업체들은 위기의식이 전염병처럼 번지면서 시장 참여를 포기한 지 오래"라며 "자재비 변동분의 총사업비 반영, MRG없는 민자사업의 자금재조달 완화 등 당장 손쓸 수 있는 과제부터 개선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민자제도 개선은 시장 요구와는 별개로 가고 있다. 지난 15일 개최된 '안정적인 교통 SOC 투자재원 확보방안' 공청회에서 정부는 SOC재원 확보를 위한 민간투자방식의 개선 의지를 밝혔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정부가 내놓은 민자제도 개선방안은 '민자사업대상 확대, 신용보증기금 보증규모 확대, 정부고시사업의 MRG를 폐지하고 운영단계에서 사업자 부담 증가, 사업추진절차 간소화를 통한 비용절감' 등 원론적인 담론에 그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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