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증시의 '욤키퍼(속죄일)'

뉴욕=김준형 특파원 2008.10.1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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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뉴욕리포트]

조지 워싱턴 브릿지를 건너 뉴욕 맨해튼으로 출근하는 뉴저지안들은 9일 모처럼 시원한 출근 드라이브를 즐겼다.
평소 소요 시간의 절반 정도인 40분도 채 안걸려 맨해튼에 도착할수 있었던 것은 유대인 최대 휴일인 욤키퍼(속죄일)였기 때문이다.

욤 키퍼는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우상으로 만들어놓고 숭배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참회와 속죄에서 비롯됐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대신해 하느님의 용서를 받고 두번째 십계판을 갖고 내려왔다는 날이 욤키퍼이다.



이날은 한해 동안 지은 죄를 참회하고 하루종일 금식하며 예배를 드린다.
'오일쇼크'를 부른 1972년의 중동전쟁도 아랍국이 욤키퍼를 이용,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일어났다.

이날은 일을 하면 안되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유대인의 세력이 강한 월가나 미디어 분야에서 욤키퍼는 거의 국경일이다.
뉴욕 증시의 상당수 트레이더들도 장을 떠났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이날 거래된 주식은 20억주, 어제의 46억주에 비해 절반이었다



'금송아지'는 끝없는 욕망의 상징.
몇년간 금송아지에 취해 살던 월가는 이날 또 한번 채찍을 맞았다.
정확히1년전 사상 최고에 달했던 뉴욕증시는 하루동안 또다시 700포인트 떨어졌다.

거래량이 적었던 만큼 조그만 움직임도 증폭될 수 밖에 없었다.
요즘과 같은 공포의 장에서는 주가 진폭이 조금만 정상 폭을 벗어나도 그 진동의 공명이 시장을 뒤흔들게 된다. 여기에 3주간 금지됐던 금융주 공매도 금지조치 해제일도 하필 이날에 겹쳤다.

장마감을 앞두고 하염없이 폭락하는 증시를 바라보며 유대인들뿐 아니라 투자자들은 마음속에 키웠던 금송아지를 지우고 또 지웠을 법하다.
월가의 위기가 이제 자신의 일이 됐다는 것을 깨달은 '메인스트리트'의 기업들, 소비자들, 주택소유자들의 심정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신용위기의 출발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탐욕'이다.
'비이성적 풍요'의 시대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마음속에 커다란 금송아지 한마리씩을 키워왔다. CEO의 탐욕, 뱅커의 탐욕, '버는 것보다 더 쓰고 싶은 탐욕'이 쌓아올린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일으킨 먼지가 한치앞도 못보게 시계를 뿌옇게 가리고 있다.

하지만 '욤키퍼'가 참회와 고백을 통해 결국 속죄를 받는 날이듯, 어떤 최악의 위기도 끝은 있기 마련.

시장은 이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시점까지 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상 유례없는 세계 중앙은행들의 공조,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을 통해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죄 값'을 나눠 치르고 있다. 1500원을 바라보는 환율, 1200대 주가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도 그 고통의 대열에 끼어 있다.
물론 속죄의 고통과 후유증은 이제부터 시작이겠지만 '참회와 고백'까지는 이뤄진 셈이다.

아무리 장사가 안되고 금융부문 타격이 크다곤 하지만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 GM주가가 1951년으로 되돌아갔다. 다우지수가 300도 안되던 시절, 지금 갤런당 4달러 하는 휘발유는 20센트 하던 시절이다.
지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살아 있어야 하는 필수 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조차도 시장의 '공포'앞에 의미를 잃고 있다.

"오늘 폭락에도 불구하고 이제 추가하락 위험은 최소화된 시점에 도달했다"는
밀러타박의 투자전략가 마크 파도의 말이 신선하게 들릴정도로 시장에서 낙관론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최후의 낙관론자까지 사라졌을때가 바닥이라고들 한다. 탐욕앞에 무너지고 공포속에 살아나는게 주식시장이다. 미 증시 역사상 최악의 베어마켓도 고점 대비 40% 떨어졌을 때가 바닥이었다.

'사흘투매'도 아니고 '7일투매'면 이제는 시장에서 팔(SELL) 힘도 떨어져가고 있다.

10월9일 욤키퍼가 미국과 세계증시의 속죄일이 되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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