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환테크'냐 '환투기'냐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이승우 기자 2008.10.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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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만수 장관 "대기업 등 투기세력 파악"
- 각자 이익추구 땐 전체 파국··'구성의 오류'
- "달러화 매도 여부는 각자의 전략적 판단"

조선업체 등 수출 대기업들이 또 다시 정부로부터 환율 불안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이번에는 '투기세력'이라는 불명예까지 얻었다. 작년까지 달러화를 미리 팔아(선물환 매도) 원/달러 환율을 끌어내리더니 지금은 가진 달러화조차 팔지 않는다는 이유다.



그러나 기업의 자율적인 환테크 또는 외화자산 운용에 대해 '투기'라고 엄포를 놓는 것은 지나친 '관치'라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재향군인회 오찬 간담회에서 "달러를 사재기하는 기업과 국민이 있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기업들의 '달러 쟁여두기' 행태를 비판했다.



앞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투기거래를 하는 세력들, 특히 대기업에 대해 현황을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외환시장에는 투기세력 또는 투기세력은 아니더라도 투기적인 요소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며 "투기세력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환율의 추가상승을 기대하고 달러화를 갖고도 내놓지 않는 경우와 미리 달러화를 사두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투기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투기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달러화를 갖고도 시장에 내놓지 않는 (수출업체의) 경우가 더욱 문제"라고 밝혔다. 조선업체들처럼 수출대금을 뭉칫돈으로 받는 기업들이 환전을 미루는 것을 염두해두고 있는 셈이다.

일부 대기업은 달러화로 받은 수출대금을 본사가 아닌 해외지사로 돌려 쌓아두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런 기업과 그 주거래은행들에 대해 "달러를 풀라"고 우회적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달러 기근'으로 국가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기업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달러화를 쟁여둘 경우 나라 전체가 파국으로 가는 '구성의 오류'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다.

정부가 외환시장 불안을 놓고 '대기업 책임론'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과 반대로 환율이 추락하고 있던 2006∼2007년에는 조선업체 등 수출기업들의 선물환 매도가 정부의 표적이었다. 권오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2006년 11월28일 한국무역협회 국제컨퍼런스에서 "최근 환율 급변동의 일부 원인은 대형 수출업체들의 과도한 환헤지 등 쏠림현상에 있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 달러화의 환전시점을 조절하고 있는 조선업체들 입장에서도 '투기세력'이라는 비판이 억울할 수 밖에 없다. 좀 더 기다리면 달러화를 비싼 값에 팔 수 있다고 보면서 굳이 서둘러 싼 값에 팔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조선업체들이 전략적으로 달러화를 쟁여두고 있기도 하지만,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조선업체들의 경우 과거 선물환 매도분에서 평가손실이 발생하면서 거래은행과의 거래 한도가 제한됐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보유한 달러화를 파느냐 마느냐는 각자가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문제"라며 "정부가 '투기'라고 윽박지르면서 팔라고 하는 건 외환시장의 문을 닫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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