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 Insight]'시장개입' 망설여야할 이유

더벨 이진우 NH투자선물 리서치 팀장 및 기획조사부장 2008.06.1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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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시장은 정글과 같습니다. 수없이 밀려오는 정보의 바다에서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지혜가 없으면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피말리는 머니게임이 벌어지는 금융시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thebell이 엄선한 칼럼진의 통찰력과 함께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기사는 06월16일(16:16)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또 시장을 좁은 레인지 안에 가두겠다고 나선 외환당국



지난 5월 21일 장 중 1057.30원까지 치솟던 달러/원 환율은 이후 외환당국의 매도개입으로 방향을 아래로 틀어 6월 4일 1010.40원까지 밀려났었다. 3월에는 매도개입 단행한지 8일 만에 다시 매수개입이 이뤄지기도 하면서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는 시장의 볼멘소리도 터져 나온 적도 있지만, 어쨌든 5월 하순의 분위기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이어진 당국의 매도개입으로 인해 "지금처럼 유가가 초강세를 보이는 와중에 환율까지 급등하는 것은 정부가 원치 않는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어디까지 밀리는 환율인지 내침 김에 한 번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6월 4일 손병두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의 "최근 환율급락, 수급 아닌 완전히 심리에 의한 것으로 우려"라는 발언에 시장은 정신이 확 들었다. 막상 역내외 숏플레이로 밀어보니 아래쪽을 받치는 달러 매수세의 강도도 만만치 않다고 느끼던 터에 외환당국의 진정한 속내가 환율의 급락도 아님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 위쪽으로 돌아선 환율은 지난 금요일(6월 14일) 전일 대비 7원이나 오르면서 1041원으로 마감하여 5월말 종가 1030.10원을 훌쩍 올라섰고 주말을 보내고 난 월요일에도 1044원까지 고점을 높이는 강보합세를 보였다. 그러다가 다시 1040원이 갑자기 깨지더니 "현시점에서 정부는 환율이 물가안정에 도움 되는 쪽으로 움직이길 희망한다"는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의 구두개입이 보도되고 있다. 환율 30원 남짓 오르니 다시 매도개입이 단행된 것이다.



이런 식의 환율 '관리(?)'가 정말 확고한 의지로 꾸준히 이뤄진다면(의지와 능력은 별개의 문제지만),낙아웃(knock-out) 레벨 1,010원에 낙인(knock-in) 레벨 1,060원 정도로 잡는 키코(KIKO) 신상품 개발도 생각해 볼 만하겠다.(작년부터 KIKO옵션을 심층 보도한 '더 벨'의 독자라면 이 정도 상품 구도는 이제 머리속에 그림이 훤하게 그려질 것으로 짐작된다. 요즘 같아서는 통화옵션 상품 잘 만들었다고 잘 팔린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 나라 안팎에서 감지되는 외환위기(?)의 징후

집권여당의 정책위의장(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은 6월 둘째 주 내내 "현재의 경제상황이 외환위기 때의 상황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거시경제 지표를 전체적이고 구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계속 쏟아내 언론의 주목을 끈 바 있다. 시장에 미치는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기자들의 지적에는 "시장도 이미 알고 있다"는 대답으로 임의장은 대응하였다. 그가 지적한 위기 징후는 높은 물가와 국제수지 적자 기조, 외채급증(단기외채 중심의 외채구조도 불안), 국내 금융기관들의 단기화 되어가는 자본구조, 마이너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기업투자 등으로 대별된다([차트 1] 참조).
[Market Insight]'시장개입' 망설여야할 이유


국내적으로 짚어볼 수 있는 위기 징후(?)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도 없지 않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폭등은 한국만 겪는 고통이 아니며, 비록 단기외채의 급증으로 순채무국으로의 전환이 초읽기에 접어들었지만 단기차입금으로 이머징 국가들이 발행한 하이 리스크(high-risk) 채권에 장기투자에 나섰던 97년 외환위기 이전의 외채와 수출기업 및 해외투자 펀드들의 환리스크 헤지로 인해 늘어난 외채는 그 건전성에서 성격이 판이하다는 지적도 말은 된다. 그리고 지금 경상수지가 적자라고는 하지만 외환위기 이전처럼 수 년 동안 고착화되고 누적되어 온 경상적자와는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


그러나 아래 두 개의 차트를 보게 되면, 지금 이 시점에 막연한 낙관론보다는 그나마 조심스러운 비관론 내지 경계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된다.

[Market Insight]'시장개입' 망설여야할 이유
97년 아시아의 외환위기는 바트화의 폭락으로부터 출발했다. 2002년 4월부터 시작된 글로벌 달러약세의 흐름에 편승하여 태국 바트화도 그 동안 지속적인 강세흐름을 이어왔지만 작년 하반기부터는 환율 변동성이 급증하면서 바트화가 약세로 돌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태국 중앙은행이 자국통화 가치의 급락을 막기 위해 달러매도 개입에 나섰음을 공식 인정하기도 했는데(그 날은 태국 뿐만이 아니라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등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달러매도 개입에 나섰다), 10년 만에 다시 보게 되는 작금의 아시아 중앙은행들의 달러 매도개입은 왠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Market Insight]'시장개입' 망설여야할 이유
글로벌 증시의 불안한 흐름 가운데에서 굳이 홍콩 항셍지수를 살펴보는 것은 97년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그 당시 국내 일간지 1면을 장식한 홍콩 노부부(주가 급락에 망연자실한 모습)의 사진은 대다수 독자 여러분들도 기억하시리라… 지금 세계 증시는 연준의 유동성 공급이라는 비상 대응으로 그럭저럭 잘 버텨내고는 있으나 불안한 흐름을 보이는 것은 선진국 증시, 이머징 증시 할 것 없이 공통적인 현상이다. 금주 미국 내 주요 IB들의 분기 실적발표가 고비가 되겠고, 중국 및 중국 주변 증시는 8월 올림픽을 전후한 장세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아직 본 게임은 시작도 안 했을 수 있기에…

서울 외환당국이 시장개입이라는 '패'를 최대한 아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개입을 논할 때마다 빠질 수 없는 원론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어지간하면 시장에 맡겨둔다는 자세를 정부나 당국은 견지해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역사적, 실증적으로 한국 정부가 시장개입을 통해 환율의 흐름을 돌려세운 적이 없었고(얼마나 수급이 꼬였으면 당국이 나서야 할 정도이겠는가?), 얼마 움직이지도 않은 환율에 번번히 당국이 변수로 작용한다면 시장의 자율성과 체질은 극도로 훼손되고 허약해지지 마련이다.

두 번째로는 아직 '본 게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몸 푸는 과정에서 힘 다 빼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시장이 애원에 가깝게 당국의 역할을 요구할 때가 멀지 않아 보인다. 그 때를 위해서라도 당국은 최대한 가능 동원한 패를 아끼고 체력도 비축해 두어야 할 것으로 본다. 전일 대비 3원도 돌려세우지 못하는 개입이라면 이건 개입도 아니다. 그리고 시장은 작금의 개입을 '달러 바겐세일'로 인식하고 있다. 두고두고 싸워야 할 상대에게 너무 헤프게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Market Insight]'시장개입' 망설여야할 이유
[이진우 NH선물 기획조사부장 약력]



2002년~현재: NH투자선물 리서치 팀장 및 기획조사부장
2000년~2002년: 농협중앙회 국제금융부 원/달러 트레이딩
1995년~1999년: 한화종합금융 국제금융부 딜링룸 헤드
1990년~1995년: 한국종합금융 국제금융부 외화대출및 딜링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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