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판사 "'혜진ㆍ예슬법' 전시효과 불과" 비판

머니투데이 정영일 기자 2008.04.03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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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행정2부 설민수 판사가 3일, 최근 법무부가 아동 성폭행범에 대해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적용하는 것을 뼈대로하는 가칭 '혜진ㆍ예슬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전시 효과'에 불과하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고 있다.

설 판사는 이날 법원 내부전산망에 올린 글을 통해 "성범죄 전반의 법정형을 대폭 올리겠다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고형을 올려 범죄를 억제하겠다는 생각은 '경제적으로 합리성을 가진 범죄자'라는 가설에 따른 것"이라며 "그러나 인간의 성을 매개로 한 행위는 기본적으로는 합리적 계산과는 거의 관계가 없고, 특히 범죄는 더욱 그러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오랜 교제관계 중 일부 강제력을 쓴 경우나 구타나 폭행 후 성폭행도 법률상 동일한 선고형을 받게 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모든 성폭행에 대해 결국 같은 양형을 대하게 될 것이고 결국 이를 판결하게 될 판사들은 사안에 따라 가능한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형을 낮추는 방식을 쓰게 될 것"이라며 부작용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혜진ㆍ예슬법'에 대해서도 "이미 (아동 성폭행 후 살해와 관련한) 대부분의 유사범죄는 사형이 가능하고 최소 무기형 정도를 선고하고 있다"며 "법정형을 올리는 것은 무언가 남겼다는 한건주의는 될 지언정 현실적 대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설판사는 이제 시스템 자체 또는 환경적 변수를 변화시키기 위한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 해법들이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성년자 대상 범죄에 대해 어떤 거창한 대책을 내놔도 1개월 후 정도 지나가면 또 다시 발생하는 다른 범죄들에 묻힐 수 밖에 없다"며 "성폭행 예방 및 범인 검거 관련한 예산과 인력을 보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설 판사는 △성폭행 예방과 범인 검거 관련 예산과 인력 보강 △사회 복귀 범죄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 △피해자 구제 사회ㆍ행정기관들의 유기적 움직임 등이 시급히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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