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칼럼]이명박식 실용주의 오류

머니투데이 홍찬선 머투경제방송 부국장대우 2008.03.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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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이명박식 실용주의 오류


올해 최고의 유행어는 실용주의가 될 듯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거의 매일 실용주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식 때 기업인 좌석을 단상에 배치하고,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 때 커피나 주스를 직접 따라 마시는 모습은 실용주의로의 산뜻한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내세우는 실용주의는 또 하나의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로 흐르면서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학군장교(ROTC) 임관식 때 예비 장교들을 의자에 앉게 하고, 공무원 출근시간을 7시30분으로 앞당기며,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세무조사를 동원하겠다고 하는 등, 실용주의로 받아들이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효과성도 의심되는 ‘조치’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비 장교들을 의자에 앉게 한 것은 기존의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임관식의 주인공을 편하게 해주겠다는 ‘실용주의’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의자를 마련해야 하는 등 임관식 준비는 더 번거로웠을 것이다. 예비 장교로서도 의자에 앉아 부동자세를 취하는 것이 서 있는 것보다 힘들고 어색했을지 모른다.

공무원이 머슴으로서 1시간 일찍 일을 시작하면 국민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며 국무회의 시간을 8시로 앞당겼고, 부처 업무보고 시간도 7시30분으로 정했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실용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어리바리 증후군’에 시달리게 될 우려가 높다. 7시30분에 출근하면 퇴근시간도 그에 맞춰 4시30분으로 당겨져야 한다. 그래야 공무원 근무시간에 맞춰 민간의 업무시간도 그렇게 조정될 것이다. 하지만 머슴인 공무원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며 퇴근은 종전처럼 늦게 하게 될 경우, 과로가 누적돼 오후엔 멍해져 업무효율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공무원의 ‘어리바리 증후군’은 결국 공공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에서 물가안정을 강조하자 기획재정부 등에서 내놓은 대책이 (학원과 주요소 등의) 담합금지와 세무조사였다는 것도 실용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 물가가 급등하고 있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밀과 원유 등 국제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학기를 맞이해 학원비가 오르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따라서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환율을 떨어뜨려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의 일부분을 흡수하고, 교육개혁 등을 통해 학원수요를 낮추어야 한다. 그것이 시장친화적 실용주의를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가 마땅히 취해야 할 정책이다. 세무조사로 물가를 잡겠다는 것은 수요가 있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은 지난 30여년 동안 판명된 구닥다리 정책이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유독 원화환율이 상승(원화가치 약세)하는 것은 수출을 통해 어려운 경제상황을 돌파해보자는 ‘정책의지’가 반영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환율상승은 수출기업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국민경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내수기업과 소비자들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환율상승은 내수기업 및 소비자의 부(富)를 강제적으로 빼앗아 수출기업에 지원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친기업적(business friendly)’일지 몰라도 ‘반국민적(nation unfriendly)'인 것이다.


실용주의의 본질은 ‘열린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념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조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냄으로써 업무성과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黑猫白猫)는 실용주의의 진수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말처럼, 내 입맛에 맞는 것만 실용주의라고 여기는 ‘이명박식 실용주의’가 이어진다면 한국경제는 실용주의의 포로가 되어 신음하게 될 것이다. 공무원이 골프치는 것은 안되고 청와대에 테니스코트를 만드는 것이 실용주의의 본질은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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