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韓 던지고 李 받고…柳는 튕기고

춘천(강원)=김성휘 기자 2007.09.1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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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춘천, 한명숙 전 총리(연단 뒤)▲14일 춘천, 한명숙 전 총리(연단 뒤)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8월7일. 열린우리당 대선주자인 한명숙 전 총리가 국회 기자실에 섰다.

"여론조사가 어떻겠느냐"며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에게 3자 단일화를 제안한 때다. "부패수구세력 한나라당에 맞서 승리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란 이유를 붙였다.

그로부터 꼬박 5주뒤인 9월14일. 이해찬 한명숙 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로써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한명숙이 던지고= 단일화 제안은 당시 수많은 후보가 난립, 이른바 '친노진영'이 '비노(非盧)진영'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왜 한 전 총리였을까.

우선 자신감이다. 여론조사에서 호감도가 높았던 만큼 자신으로 단일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상황도 한몫했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박 전 대표가 후보로 결정되면 '대항마'로서 여성인 자신의 경쟁력이 부각될 거란 기대가 있었다.

이 전 총리는 즉각 "단일화를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대선출마 여부를 저울질하던 유 전 장관은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로부터 꼬박 일주일 뒤인 8월14일.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은 이른바 "우승 야망을 품은 페이스메이커"란 말을 던지며 대선출마 의지를 확인한다.


◇유시민은 튕기고= 순조롭게 진행될 듯하던 단일화 논의는 유 전 장관이 '완주 의지'를 거듭 확인하면서 난항에 빠진다.

갈등이랄 것까지야 없지만 의견차는 분명했다. 이해찬 한명숙 후보는 "15일 경선이 시작되기 전 단일화해야한다"는 입장. 더 늦으면 중도탈락이 되므로 사표(死票)가 대량 발생한다는 논리였다.



유 후보는 달랐다. "우물물을 한 번 맛이라도 봐야하지 않느냐"며 조기 단일화에 부정적이었다.

9월5일 예비경선이 끝났다. 순위가 바뀌는 우여곡절끝에 세 사람 모두 컷오프를 통과했다.

다시금 단일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세 후보는 대리인을 내세워 실무접촉을 진행한다. 그러나 시기와 방법,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시간은 자꾸 흘렀다. 결국 이해찬 한명숙 후보가 먼저 단일화하고 유 후보와는 2단계로 단일화하자는 '대안'이 고개를 들었다.

◇이해찬이 받았다= 지난 9월 10일 재야원로 초청으로 세 후보가 간담회를 열었고 11일부턴 대리인 실무접촉이 본격화됐다. 여기서부터 유 후보는 완전히 빠졌다. 12일엔 "단일화하려고 출마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두 후보는 △1차경선 이전인 14일까지 두 사람 먼저 단일화하고 △여론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참고해 후보들이 결단을 내리자고 뜻을 모았다. 이후엔 속도전이었다.



12~13일 이틀간 전국 3000여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결과는 13일 밤 나왔다. 여론조사로는 이해찬 후보가 우세한 걸로 나왔다.

한명숙 후보측은 밤샘 회의에 들어갔다. 한 후보는 '결단'을 내렸다. 후보 사퇴와 이해찬 지지였다.

결국 14일 오전 10시경, 두 사람은 춘천으로 향하기 전 따로 만나 이해찬 후보로 단일화하는 데 합의했다.



이날 춘천 합동연설회 직후 한 후보는 "이 후보 캠프에 구체적으로 무슨 직위를 맡는 일은 (현재로선) 없을 것"이라면서도 "어떤 형식으로든 남은 한달 최선을 다해 내 일처럼 함께 하려고 한다"고 협력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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