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쓰던 걸 아직도…헤즈볼라, '삐삐'로 의사소통 이유는?

머니투데이 이지현 기자 2024.09.19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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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에서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무선호출기(Pagers, 삐삐)와 무전기의 집단 폭발 사고가 연이틀 발생하면서, 과거에 인기를 끌던 삐삐 등 성능이 낮은 통신 기기를 헤즈볼라가 여전히 사용하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17일(현지시간) 레바논에서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선호출기.  /사진=X17일(현지시간) 레바논에서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선호출기. /사진=X


18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레바논 동부 베카밸리와 베이루트 외곽 다히예 등지에서 헤즈볼라 거점을 중심으로 '워키토키' 무전기 수천 대가 동시다발로 터지면서 최소 20명이 숨지고 450여명이 다쳤다. 전날 삐삐 폭발 사고로 어린이 2명을 포함해 12명이 사망하고 약 3000명이 다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해외 언론은 헤즈볼라의 삐삐 사용에도 주목했다. 로이터통신은 '누가 아직도 호출기를 사용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휴대폰이 세계의 주요 통신 수단이 되면서 삐삐라고 알려진 호출기는 1990년대 전성기 이후 수요가 급감했다"고 짚었다. 현재 삐삐는 의료 및 응급 서비스와 같은 일부 영역에서 중요한 통신 수단으로 남아있다. 내구성, 긴 배터리 수명 같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주요 병원 의사는 "삐삐는 답장이 필요 없는 메시지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헤즈볼라 역시 수년 동안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삐삐를 사용해왔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위치추적과 전자 감시를 피하기 위함이다. 실제 휴대폰과 컴퓨터 해킹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전자 도청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18일(현지시각) 레바논 남부 시돈에 주차된 자동차 한 대가 내부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무전기 폭발로 파손돼 있다. 지난 17일 레바논 전역에서 무선호출기 수천 대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12명이 숨지고 2800여 명이 다친 데 이어 18일에는 헤즈볼라가 사용하던 무전기가 레바논 곳곳에서 폭발해 최소 20명이 숨지고 450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AP=뉴시스18일(현지시각) 레바논 남부 시돈에 주차된 자동차 한 대가 내부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무전기 폭발로 파손돼 있다. 지난 17일 레바논 전역에서 무선호출기 수천 대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12명이 숨지고 2800여 명이 다친 데 이어 18일에는 헤즈볼라가 사용하던 무전기가 레바논 곳곳에서 폭발해 최소 20명이 숨지고 450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AP=뉴시스
지난 2월에는 헤즈볼라 대원들에게 전장 근처에 휴대폰을 가지고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도 내려졌다. 당시 하산 나스랄라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는 TV 연설에서 "휴대폰이 이스라엘 스파이들보다 더 위험하다며 휴대폰을 부수거나 철제 상자에 넣어 보관하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헤즈볼라 전사들은 작전 중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헤즈볼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사설 유선 통신망을 사용해 왔다. 대화를 도청할 경우에 대비해 무기 관련 장소와 회의 장소에는 암호가 사용된다. 이는 거의 매일 바뀌며, 새로운 암호는 물리적으로 전달된다고 한다.

보안 전문가들은 이같은 구식 통신 수단이 고도 기술 대응에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에밀리 하딩 연구원은 "VPN(가상 사설망)을 사용하는 단순 행위, 휴대폰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표적을 찾아내는 것을 훨씬 어렵게 할 수 있다"면서도 "헤즈볼라 지도부가 그들의 군대와 신속하게 소통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국 9·11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의 수괴 오사마 빈 라덴 역시 10년간의 도피 생활에서 물리적인 전송 방식을 이용한 의사소통 방식을 택했다. 인터넷과 전화 등 통신 서비스는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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