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전시회에서 만난 반도체학과 교수 5명은 삼성 반도체의 부진 요인으로 경직된 조직문화를 첫손에 꼽았다. 소통 부족과 상명하복 형태의 수직적 문화가 투자 시기를 늦추고 근로 의욕을 꺾어 근본적인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이대로라면 국내는 물론 인텔, TSMC 등 해외 경쟁사에게까지 인재를 뺏길 것이라는 쓴소리도 던졌다.
전영현 부회장이 DS(반도체) 사업부 부문장으로 취임한 직후 "부서 간 소통의 벽과, 문제를 회피하는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거듭 지적한 것도 조직문화가 부진의 원인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에서만 15조원이 넘는 적자를 냈으며, 차세대 메모리 HBM 시장에서도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내줬다. TSMC와의 파운드리 점유율 격차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SK하이닉스의 경력직 채용에 저연차 구성원들이 줄지어 지원하는 등 삼성도 비슷한 위기에 놓였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 직원들이 두셋만 모이면 '문제 해결 절차를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곳곳에서 나오는 위기론에 눈을 감지 말고, 강력한 변화에 나서야 할 때다. 수조원대 적자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잘못된 조직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