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AI 시대, 법학의 위기

머니투데이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2024.09.12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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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범용기술로서 생성형 AI(인공지능)가 영향을 미치는 분야 중 법률만큼 심대한 것도 찾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분야는 생성형 AI 학습에 필수인 법조문, 판례, 법이론 등의 데이터가 양적, 질적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공개돼 있으며 법적 추론에 따른 결론이 대부분 선례에 구속된다는 점에서 생성형 AI의 결론이 타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법조문과 판례를 암기하고 해석하는 기존 법학 교육방법은 AI 시대엔 효용성이 크게 감소한다.

지난 금요일(6일) 열린 한국법학교수회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선 2009년 3월 로스쿨 도입 이후 법학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2008년 당시 1만270명이던 대학교 법학전공 입학정원이 2023년엔 2907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법학전공 학생이 줄다 보니 전국 법학교수 수, 법학논문 수, 법학박사 취득자도 감소일로여서 앞으로 연구와 교육을 담당할 학문 후속세대 양성도 불가능해지고 학부의 법학교육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고시낭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로스쿨은 변호사시험(변시)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 로스쿨 학생들은 변시 합격을 위해 변시과목 위주로 1만2000여개에 달하는 판례를 암기할 뿐 기초법학이나 지식재산, 공정거래 등 변시 선택과목 수강은 외면한다.

로스쿨과 변시 도입 15년이 지난 지금 학부 법학의 위기로 법학이 법적 소양을 갖춘 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기초법학의 소멸로 법학의 학문성이 쇠퇴하면서 법학의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문제의 근본원인은 약 50%에 불과한 변시 합격률로 인해 로스쿨도 학생도 변시 합격 외엔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학의 양적, 질적 위기는 단순히 법학이라는 학문분야의 위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은 정의(justice)의 다른 이름이다. 법학은 사회의 정의로운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법의 원리와 작동을 규명하는 학문으로 법학의 위기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오고 나아가 국가사회 공동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다양한 해결책이 제시된다. 여기에는 기초법학의 필수과목화, 변시 합격률 상향이나 자격시험화, 학부 법학 교육의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한국과 유사한 법조인 양성제도를 지닌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일본은 2004년 로스쿨체제를 도입했으나 한국과 달리 4년제 학부 법학과를 존치하고 있으며 변시에 응시하려면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더라도 예비시험에 합격하면 사법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진다. 또한 일본 법학부 학생 중 학문적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로스쿨에 진학해 졸업하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한 뒤 교수의 추천을 받아 조교가 되거나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방식으로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한다. 일본은 학문으로서 법학과 실무로서 법학을 조화롭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앞으로 단순히 법률지식만 보유한 법조인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신기술 발전, 고도로 복잡한 이해관계 갈등, 글로벌 기후 및 전쟁위기 등 끊임없이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법조인만 살아남을 것이다.


로스쿨 설치법에 따르면 우수한 법조인은 풍부한 교양, 인간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 자유·평등·정의를 지향하는 가치관, 건전한 직업윤리관, 복잡다기한 법적 분쟁을 전문적·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식 및 능력을 갖춘 자다. 현재의 법학교육이 과연 이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법학이 학문연구에 종사하는 법학자, 분쟁의 해결에 기여하는 법조인, 법적 소양을 갖춘 민주시민을 포괄적으로 양성하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토록 제도개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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