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지막날 34명 사망" 줄행랑 선장 생존…미 해안 '선박 화재' 비극[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민수정 기자 2024.09.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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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19년 9월2일(현지시간) 오전 3시가 지났을 무렵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섬 인근에서 다이버 용 보트 '컨셉션호'에 화재가 발생했다./AFP=뉴스12019년 9월2일(현지시간) 오전 3시가 지났을 무렵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섬 인근에서 다이버 용 보트 '컨셉션호'에 화재가 발생했다./AFP=뉴스1


2019년 9월 2일 오전 3시가 지났을 무렵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스섬 인근에서 다이버용 보트 '컨셉션호'에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선체에는 탑승객 33명과 선원 6명 등 총 39명이 있었다. 이들은 이틀 전인 같은 해 8월 31일 산타바버라에서 출발해 산타크루스섬과 채널 아일랜드 일대를 스쿠버 다이빙으로 탐사하는 등 3일간 다이빙 여행을 즐길 참이었다.

그런데 여행 마지막 날인 2일 새벽 산타크루스섬 북쪽 해안 18㎞ 지점에서 정박 중이던 배의 갑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했고 플라스틱 의자, 다이빙용품 등 각종 물건이 타면서 검은 유독가스를 내뿜었다.



탑승객은 나 몰라라…바다 뛰어든 선장
AP 통신에 따르면 급박한 상황 속에서 선장 제리 보일런(70)이 가장 먼저 바다로 뛰어들었다. 몇몇 선원들도 차례대로 바다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한 승조원은 다리에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갑판에 남아있던 선원 1명을 제외하고 컨셉션호 직원 5명은 인근 선박 도움으로 모두 대피에 성공했다.



컨셉션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사람들./AFP=뉴스1컨셉션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사람들./AFP=뉴스1
그러나 승객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선원 1명을 포함한 총 34명이 모두 연기 흡입으로 질식해 사망한 것.

희생자 중에는 일가족 5명도 있었는데, 아버지 생일을 맞아 세 딸이 아버지 그리고 새어머니와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또 여성 해양생물학자, 연인, 자녀와 함께 온 가족, 학생 등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탑승객이 컨셉션호에 타고 있었다.

사고 당일 아침이 돼서야 불은 진압됐다. 배는 이미 뱃머리 일부분만 남긴 채 수심 16m 깊은 바닷속으로 침몰한 상태였다.


목격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불길의 높이가 30피트(9.2m)는 돼 보였다. 배가 화염에 휩싸여 완전히 전소됐다"고 떠올렸다.

컨셉션호 화재·침몰 사고는 2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1865년 브라더 조나단호 침몰 사고 후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발생한 '최악의 해상 사고'로 알려졌다. 또한 1989년 미군 해군 전함 USS 아이오와 포탑 폭발 사고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컨셉션호' 화재 원인은?
'전자기기 과충전' '가스 폭발' 등 화재 원인에 대한 추측이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명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사고 발생 1년이 지난 시점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과열'로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컨셉션호 직원도 "잠자리에 들기 전 휴대 전화에 충전기를 꽂았을 때 불꽃이 튀는 것이 보였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컨셉션호 운영 회사가 갖고 있단 또 다른 선박에서는 사고 발생 11개월 전 배터리로 인한 화재가 발생한 적 있었다.



이에 미 해안경비대는 컨셉션호 사고를 계기로 상업용 선박에서 휴대전화 충전 등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한편 사고 발생 4년이 흐른 지난해 9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기밀 보고서를 인용하며 미연방 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국(ATF)이 컨셉션호의 발화 지점을 '선체 내 쓰레기통'으로 특정했다고 보도했다.

참사 막을 방법 있었다…"안전 결함 발견"
2019년 9월2일(현지시간) 컨셉션호 화재로 사망자가 발생하자 구조대와 보안관들이 수습한 시신을 산타바버라 항으로 옮기고 있다. /AP=뉴시스2019년 9월2일(현지시간) 컨셉션호 화재로 사망자가 발생하자 구조대와 보안관들이 수습한 시신을 산타바버라 항으로 옮기고 있다. /AP=뉴시스
컨셉션호 사고는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사망한 선원 1명을 포함한 승객들은 갑판 아래 선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NTSB는 불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갑판 아래 좁은 복도 및 출입구가 막혀 승객들의 탈출로가 마땅히 확보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했다.

반면 갑판 위에 있던 선장과 선원들은 생존했다. 이들은 불이 났을 무렵에도 비상 상황에 대비한 불침번을 서지 않고 모두 잠을 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 규정을 위반한 셈이다.

조사관 앤드류 엘러스는 "만약 승무원 한 명이 깨어있어 새벽에 컨셉션호를 둘러봤다면, 화재를 일찍 발견하고 화재 진압 후 승객 및 승무원에게 대피를 요청하는 시간을 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선박 소유주 측 변호인은 당시 직원 한 명이 화재 발생 전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되는 구역을 확인했다고 주장했지만,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이 밖에도 선체 내부에는 화재 발생 여부를 알려줄 연기 감지 경보 장치가 없었다는 점, 컨셉션호 선실 내 비상 탈출구는 일반인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기엔 복잡한 구조라는 점 등 여러 안전 결함이 지적됐다.

"희생자, 신발 신고 손전등·휴대폰 들고 있었다"
FBI 요원들이 2019년 9월4일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항구에서 잠수함 콘셉션의 자매선인 비전과 트루스 선박 앞 부두에 서 있다./사진=AFPFBI 요원들이 2019년 9월4일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항구에서 잠수함 콘셉션의 자매선인 비전과 트루스 선박 앞 부두에 서 있다./사진=AFP
희생자들 모습은 참혹했다. 시신 훼손 정도가 심해 유가족과 DNA를 대조해 신원을 파악해야 했고, 열흘이 지나서야 모든 신원이 확인됐다.



CBS 뉴스에 따르면 승객 대부분이 신발을 신었고, 일부는 손에 손전등 혹은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당시 승객들이 탈출을 시도했는지 여부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사건 발생 1여년 후 살아남은 선장 제리 보일런은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보일런을 포함한 생존 선원 5명은 선실에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불길이 너무 강해 아무도 살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선박을 버렸다고 주장했다. NTSB도 "일부 선원은 컨셉션호에서 탈출한 후에도 배로 돌아가 생존자를 구조하려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LA) 연방 지방검찰은 선장이 야간 경비 업무를 소홀히 하고 승조원 교육과 화재 대피 훈련 등 부주의했다고 반박에 나섰다.

LA 연방법원은 지난해 11월 선장 보일런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후 사건 발생 약 5년 만인 지난 5월 보일런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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