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아내가 살해됐다" 남편과 안기부의 사기극…16년만에 밝혀진 진실 [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차유채 기자 2024.08.1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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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2003년 8월 14일, 간첩이란 누명을 썼던 수지 김(본명 김옥분)씨 유족이 국가와 김씨 살해범 윤태식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로써 유족은 이른바 '수지김 사건' 16년 만에 조금이나마 고통에서 해소될 수 있었다.

'수지김 사건'은 윤태식이 부인이었던 김씨를 홍콩에서 살해한 후 저지른 월북 미수사건이다. 심지어 제5공화국 정권은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여간첩 남편 납북기도사건'으로 조작했다. 정권 유지를 위해 월북미수범을 묵인한 것이다.



윤태식은 아내를 살해했음에도 국가 묵인 아래 벤처 사업가로 변신했고,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윤태식 게이트'가 세간에 드러나면서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

말다툼에 우발적 아내 살해→망명 시도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김씨는 1952년 충북 충주에서 1남 6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가족 생계를 위해 버스 안내원, 공장 직원, 유흥 접객원 등 여러 일을 전전했고, 이 과정에서 세간에 알려진 '수지 김'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그는 홍콩 남자를 만나 결혼해 홍콩으로 이주했으나 곧 이혼했고, 또 다른 홍콩 남자를 만났으나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이후 만난 사람이 홍콩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윤태식이었다.

김씨와 윤태식은 1986년 가을 결혼했으나, 윤태식은 불과 몇 달 후인 1987년 1월 3일 말다툼 끝에 김씨를 살해했다. 그는 주검을 침대 밑에 숨기고 이틀 뒤 싱가포르 주재 북한 대사관을 찾아가 망명을 신청했다.


그러나 북한 대사관은 윤태식을 내쫓았고, 그는 이어 미국 대사관을 찾았다. 하지만 미국 대사관 역시 윤태식을 돌려보냈고, 그는 결국 대한민국 대사관으로 보내졌다. 이때 윤태식은 "북한의 공작원에게 납치되었다가 탈출했으며, 아내는 북한의 간첩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가보안법 제21조 3항에 '이 법의 죄를 범한 자를 체포할 때 반항 또는 교전상태하에서 부득이한 사유로 살해하거나 자살하게 한 경우에는 체포한 경우에 준하여 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 조작에 반공투사 된 아내 살해범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당시 현지 주재관은 "아내는 북한의 간첩이었고, 나를 납치해 끌고 가려 했으나 탈출했다"는 윤태식의 황당한 주장에 대해 신빙성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안전기획부장이었던 장세동은 이를 '납북' 사건으로 조작했다. 1987년 한국 사회가 '전두환 정권 타도'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아내 살해범은 반공 투사가 됐다.



홍콩 언론이 "수지김은 북조선 간첩이 아니다"라고 정정보도를 했음에도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1980~1990년대 대한민국에는 이 소식이 전달되지 않았다.

홍콩 경찰이 김씨 살인사건과 관련해 윤태식을 홍콩으로 불러서 조사하려 했으나 대한민국 외무부는 이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좌제로 고통받은 수지김 유가족…윤태식은 승승장구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간첩으로 몰린 김씨 유가족은 연좌제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이들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감시로 평범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으며 가혹행위를 수반한 강도 높은 조사를 견뎌야 했다. 김씨 여동생 네 명 중 세 명은 이혼당했고, 자녀들도 간첩의 가족이라며 집단 괴롭힘을 당해 제대로 된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다.

반면 윤태식은 승승장구했다. 사기 행각을 지속했고, 적발돼도 새로운 사업을 벌려 재기했다. 출소 이후엔 '패스21'이라는 지문 인식 첨단 기술 회사를 설립해 유망한 벤처 기업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0여년 만에 드러난 진실
/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사진=유튜브 채널 '그것이 알고싶다' 캡처
진실은 10여년이 흐른 후에야 수면 위로 떠 올랐다. 2000년, 처음으로 사건 전말을 알리는 보도와 TV 프로그램이 공개됐고, 김씨 유족은 윤태식을 고소했다.

2001년 안기부와 윤태식의 커넥션이 포착되면서 공소시효를 50일 남겨둔 2001년 11월 13일, 윤태식은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윤태식은 아내를 살해한 후 15년이 지난 2002년에야 살인죄로 징역 12년, 기타 비리로 징역 3년 6개월 등 총 징역 1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사건의 은폐 및 조작을 주도했던 장세동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

유족 10명은 같은 해 10월 대한민국 정부와 윤태식을 상대로 108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2003년 8월 14일, 법원은 42억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당시 유사소송과 비교했을 때 최고 배상 금액이었다.

국가정보원은 2003년 8월 21일 김씨의 명복을 빌며 사건 조작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고, 정부는 장세동 등 당시 안기부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배상액을 물리기로 결정했다.



반성은 없었다…윤태식, 감옥에서 협박편지 발송
/사진=채널A 뉴스 방송화면 캡처/사진=채널A 뉴스 방송화면 캡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윤태식은 2012년 이 사건과 관련해 시신 감정을 맡았던 법의학자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반성 없는 모습을 보여 충격을 안겼다.

편지를 받은 이정빈 단국대 석좌교수는 채널A를 통해 "편지 받았을 때 섬찟하기도 하고 기분도 영 안 좋았다"며 "제 감정 내용이 자신한테 불리하게 작용하니까 직접 저한테 항변을 하는 게 아닌가(싶다)"라고 털어놨다.

편지에는 "교수님의 잘못된 증언으로 인해 중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교수님 증언이 허구인지 치가 떨립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2017년 4월26일 만기 출소한 윤태식은 이후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보안 업체를 설립해 인증 관련 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현재 해당 사업 관련 공식 홈페이지는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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