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훈, 깡보다 성실함으로 채워간 ‘화인가 스캔들’ [인터뷰]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2024.08.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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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정지훈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배우 정지훈은 서글서글한 눈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명확하되 다정했다. 베테랑의 진면목을 느끼는 데에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았고 돌려 말하지 않았다. 모든 대답이 진솔했고 또 상대의 흥미를 이끌 줄 알았다.

아이즈(IZE)는 최근 디즈니+ 시리즈 ‘화인가 스캔들’ 종영 기념 인터뷰를 위해 서울 종로구 팔판동 모 카페에서 정지훈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와의 주된 대화 주제는 ‘화인가 스캔들’이었으나, 잘 알려졌다시피 활동 영역이 전방위이다보니 그의 이야기 주머니에선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가 나왔다. 배역에 대한 이해, 작품에 대한 해석, 배우로서의 고민, 가수 비로서 활동 계획 등과 더불어 “내가 떳떳하게 살려면 착하게 살면 된다”라는 삶의 지혜까지. 1시간여의 대화는 정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화인가 스캔들’ 이야기로 말문을 연 정지훈은 지난달 31일부로 전 회차(10부작)를 공개한 소회에 대해 “잘 마무리돼서 다행이다. 성적도 좋아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라며 웃어 보였다. '화인가 스캔들'은 대한민국 상위 재벌 1% 화인가의 상속 전쟁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나우 재단 이사장 오완수(김하늘)와 그의 경호원 서도윤(정지훈)이 주변인의 의문스러운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드라마다. 이 작품은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 기준으로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4개국 디즈니+ TV쇼 부문에서 1위를 기록하며 흥행했다.

정지훈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정지훈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성적과는 별개로 작품성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지만 정지훈의 반응은 의연했다. 그는 “대본의 타깃은 두 개다. 작품성과 대중성이다. 대중성을 타깃으로 한 작품은 클리셰가 기본값일 수밖에 없다. 사실 ‘화인가 스캔들’에도 그런 장치가 있었다. 이게 뻔하지만 통할 거라고 느꼈다. 내일 설사할 걸 알지만 그럼에도 매운 마라탕을 먹는 것처럼(웃음)“이라고 말했다.

극중 정지훈이 연기한 서도윤은 경찰 출신 경호원이다. 친구가 살해당하자 그 배후를 밝히기 위해 화인가에 잠입하는 인물이다. 친구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식 당한 도윤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대다수 장면에서 무표정한 얼굴이다. 과묵해서 대사도 많지 않다. 정지훈은 그래서 ‘화인가 스캔들’을 택했다. 코미디물이었던 이전 드라마 출연작(tvN ‘고스트 닥터’, MBC '웰컴2라이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와 달라서 끌렸어요. 제가 ‘화인가 스캔들’에서 연기한 서도윤이라는 인물은 정적이면서 웃음기가 없어요. 그간 보여줬던 이미지와 상반된 캐릭터였고, 대사도 문어체였죠. 저를 잘 아시는 분들에겐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작 드라마들에서는 코믹스러운 부분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도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적인 게 기본값이었어요. 범인 찾기 외에는 눈에 들어오는 게 없는 캐릭터였죠.”


정지훈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정지훈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근성이 성실하기로 소문난 그는 ‘화인가 스캔들’ 촬영장에서도 부지런을 떨었다. 현장에 늘 제시간보다 일찍 가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지켜봤다. 현장에서 의견도 끊임없이 쏟아냈다. 극단적인 갈등, 불륜, 살인 등 자극적인 설정이 많은 작품이었다 보니 시청자들이 조금이라도 납득할 수 있는 선을 계속해서 찾았다. 몸 관리도 부지런히 하며 액션신도 100%에 가깝게 직접 소화했다. 박홍균 감독이 “액션신에 있어 정지훈 배우가 100%에 가까울 정도로 완성도에 신경을 써줘서 무척 고마웠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항상 현장에 일찍 갔어요. 리허설 때도 제 촬영분 앞 신과 뒤 신을 지켜보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연구했죠. 세트장의 공기 흐름이 연기하는데 영향을 많이 주거든요. 박 감독님께도 ‘제 공간만큼은 제 것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를 했죠. 도윤은 누아르라고 생각했거든요. 서이숙 선배가 연기한 박미란 회장님은 치정이고요.(웃음) 액션신도 많아서 무술 감독님과 끊임없이 대화했어요. 잔기술 쓰지 말고 깔끔하고 스타일리시하게 가자고 의견을 냈죠.”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의견을 냈던 정지훈은 이를 반영한 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완수와의 키스신을 꼽았다. 이미 박미란 회장과 한상일(윤제문), 김용국(정겨운)과 장태라(기은세)의 불륜 서사가 있었던 터라 도윤과 완수마저 자극적인 관계로 이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그다.

“완수가 유부녀이다 보니 둘의 관계성을 두고 생각이 많았어요. 불륜이 아닌 연민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분위기와 상황에서 하게 된 일탈의 키스신으로 설득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신을 두고 김하늘 선배와 어떻게 찍어야 할지 하루 종일 걱정을 했죠. 극단의 상황에 놓이고 초췌해진 얼굴이면 그 감정선이 잘 드러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침 다양한 액션신을 끝내고 새벽 4시에 연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췌한 상태로 임하게 됐어요. 절벽에 서있는 두 남녀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단 한 번의 키스요. 둘 다 중년인데 그 상황에서 그냥 껴안기만 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을까요?(웃음)”



정지훈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정지훈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가수로 먼저 데뷔한 정지훈은 데뷔한 지 22년이 됐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동안 그는 늘 ‘톱스타’였다. 과거에 그는 독기를 품고 완벽한 결과를 향해 달렸지만, 이제는 아니다. 노력해도 그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몸소 깨달았고, 욕심을 버려야 스트레스받지 않고 더 오래 활동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모든 스트레스는 욕심이 과해질 때 벌어지는 거예요.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고 남들과 비교할 때 생겨요. 지금 팔다리 멀쩡하게 친구들과 놀러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거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저희는 대중에게 노출돼 있고 늘 평가받기 때문에 무슨 말을 들어도 그냥 받아들이고 즐기면 돼요. 이쪽 업이라는 게 노력한 대로 결과가 안 나올 때도 있어요. 예전엔 노력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오면 자괴감이 들었어요. 이제는 노력해도 안 되는게 있다는 걸 그냥 받아들여요. 그리고 겸손은 늘 중요해요.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감시자가 되어있기 때문에 착하게 살아야 해요. 내가 떳떳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착하게 살면 돼요.”



가수 비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그는 “빠르면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에 곡이 나올 것 같다. 지금 월드 투어를 돌고 있는데 세트리스트를 더 풍성하게 채우기 위해 새로운 곡이 필요하다. 지금 곡 작업에 들어갔고 피처링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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