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대기만성형 인물일 수 있다 [PADO]

머니투데이 김수빈 에디팅 디렉터 2024.08.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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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리 사회는 최대한 빠른 시기에 어떠한 성취를 이루기를 기대합니다. 교육에서도 늘 '조숙한' 영재들이 찬양을 받곤 하지요. 하지만 이제 거의 100년 가까이 펼쳐지는 인생, 좀 더 길게 볼 필요도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2024년 6월 애틀랜틱에 기고한 글에서 '일찍 꽃피운 사람'과 '뒤늦게 꽃피는' 대기만성형 사람을 대비합니다. 핵심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조숙한 영재들은 대부분 부모와 교사가 원하는 바를 빠르게 파악해 지름길을 타고 그것을 성취하는 데 익숙합니다. 문제는 그 이후죠. 타인이 내게 바라는 것을 추구하기에 바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시간이 없어, 이른 성취 이후에는 그대로 정체되는 사람들을 다들 주변에서 한번쯤 접한 바 있을 겁니다. 브룩스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중대한 발견을 한 나이가 평균적으로 44세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다른 사람들의 성취에 흔들리지 않고 진득하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자문하고 평생 배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 브룩스가 권하는 미덕입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폴 세잔(1839~1906)이 만년에 그린 '베레모를 쓴 자화상'(1898~1900) /사진제공=Wikimedia Commons폴 세잔(1839~1906)이 만년에 그린 '베레모를 쓴 자화상'(1898~1900) /사진제공=Wikimedia Commons


폴 세잔은 늘 예술가가 되길 원했다. 아버지의 강요로 법대에 입학했지만 그는 2년을 방황하다 중퇴했다. 1861년, 22세의 나이에 그는 예술의 꿈을 좇아 파리로 갔으나 에콜 데 보자르는 그의 입학을 거부했다. 그는 화가로서 고전하다가 프랑스 남부의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은행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다.

그는 이듬해 파리로 돌아갔지만 에콜 데 보자르는 이번에도 그의 입학을 거절했다. 그의 그림은 1864년부터 1869년까지 매년 파리 살롱에서 거절당했다. 그는 1882년까지 계속해서 그림을 출품했지만 어느 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마찬가지로 작품이 거절당하고 있던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함께했지만 곧 그들과의 전시도 중단했다.



중년이 되자 그는 의기소침해졌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헌신했던 수많은 습작들이 오직 부정적인 결과만을 낳았고, 너무나 정당한 비판이 두려워 나는 내 노력의 결과를 이론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 느끼는 날까지 침묵 속에서 작업하기로 결심했다네." 세잔의 그림은 가장 유명했던 동시대 화가들을 포함한 많은 예술가들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시기인 그의 나이 46세에서 56세 사이에 공개적으로 전시되지 않았다.

세잔이 47세였던 1886년, 청소년기부터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유명 작가 에밀 졸라가 '작품'이라는 소설을 출판했다. 이는 두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로, 한 명은 성장하여 유명한 작가가 되고 다른 한 명은 실패한 화가가 되어 자살한다. 화가 캐릭터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세잔을 바탕으로 했다. ("나는 내 친구이자 형제인 폴 세잔과 거의 같은 요람에서 함께 자랐다." 졸라는 훗날 한 프랑스 신문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그에게서 위대한 화가의 천재성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음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소설이 출간되자 졸라는 한 부를 세잔에게 보냈다. 세잔은 짧고 정중한 답장을 보냈다. 그 후, 그들은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895년, 세잔이 56세의 나이에 첫 개인전을 가졌을 때였다. 2년 후, 베를린의 한 미술관이 그의 그림 한 점을 구매했는데 이는 미술관이 그의 작품에 처음으로 그런 종류의 관심을 보인 사례였다. 60세가 되었을 때, 그의 그림은 팔리기 시작했지만 마네나 르누아르의 그림이 팔린 가격보다는 훨씬 낮은 가격이었다. 곧 그는 유명해지고 존경받게 되었다. 동료 예술가들은 그의 작업을 보기 위해 순례를 했다.

무엇이 그를 수십 년간의 좌절과 무명의 세월을 거치게 했을까? 한 전기 작가는 이를 그의 '앵키에뒤드'(inquietude)--그의 열정, 초조함, 불안감--에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그저 계속해서 자신을 더 나아지도록 밀어붙였다.

그의 지속적인 불만족감은 1906년, 67세를 일기로 사망하기 한 달 전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화가로서 나는 자연에 대해 더 투시력을 갖게 되고 있지만 내 감정을 인식하는 건 여전히 매우 어렵구나. 나는 내 감각 앞에 펼쳐지는 강렬함에 다다르질 못한다. 자연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그 놀라운 색의 풍부함이 내겐 없다." 그는 죽는 날까지도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여전히 스스로를 가르치며 개선하고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파리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현대 미술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마티스와 피카소 모두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우리는 조기 성공을 장려하도록 구조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미국의 학교 시스템은 성적과 SAT 점수를 사용하여 18세가 되면 사람들을 분류한다. 이 중 일부는 명문 학교라는 발판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반면, 다른 이들은 뒤처진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테일러 스위프트, 마이클 조던 등,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성공 모델 중 많은 이들이 젊었을 때 크게 성공했다. 잡지들은 '뛰어난 30세 미만 청년 30인30 Under 30'과 같은 목록을 발표해 떠오르는 젊은 슈퍼스타들을 미화한다. 나이 차별은 현실이다. 예를 들어, 2010년 캘리포니아에서는 사람들이 인종 차별이나 성희롱보다 나이 차별에 대해 주 공정고용주택부에 더 많은 소송을 제기했다. "당연히 젊은 사람들이 더 똑똑하죠." 저커버그는 한때 이렇게 말했는데 아마도 미국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발언일 것이다. "미국인의 삶에는 제2막이 없다."라고 스콧 피츠제럴드가 한때 관찰했는데 이는 그 다음으로 어리석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겐 인생 후반에 꽃피는 재능이 일찍 꽃피는 재능보다 더 중요하다. 2019년 덴마크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노벨상 수상자들은 평균적으로 44세에 중요한 발견을 했다. 심지어 뛰어난 사람들도 자신의 분야를 마스터하는 데 적어도 20년 정도가 필요한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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