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손보사 독점 뚫고 48년째 '꿋꿋'…해외매출 일등공신 '우뚝'

머니투데이 도쿄(일본)=황예림 기자 2024.07.1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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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금융강국 코리아]⑦-<1>현대해상

편집자주 해외 공항에서 우리나라의 은행 광고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해외 진출 지역마다 '맞춤형 현지화' 전략을 앞세운 금융회사들은 K금융의 영토를 넓혔다. 이제는 넓어진 영토에서 핀테크 기술 등을 앞세워 '디지털 금융 DNA'를 심고 있다. 국경을 넘어 미래로 향하는 K금융의 전략을 취재했다.

현대해상 일본지사 매출 추이/그래픽=김다나현대해상 일본지사 매출 추이/그래픽=김다나


일본 도쿄역 인근 고층빌딩에 둥지를 튼 현대해상 일본지사는 현대해상 해외매출의 일등공신이다. 현대해상은 국내 손해보험사가 전부 철수한 일본 시장에서 48년간 자리를 지켰다. 과거 재일교포 고객이 절대다수였지만 새로운 먹거리를 모색하며 틈새시장을 공략한 끝에 현재는 고객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졌다. 올해는 손해율을 낮춰 매출을 1670억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일본 손보사의 영향력이 막강한 현지시장에서 신용보험 등 새로운 스페셜리티 보험의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일도 중장기 과제로 삼고 있다.

현대해상 해외매출 1위…험난한 환경에도 유일하게 자리 지켰다
현대해상 일본지사는 지난해 177억4500만엔(약 15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3년 전인 2020년 149억9400만엔(약 1290억원)보다 18% 증가했다. 매출액 성장은 원수보험료가 늘어난 결과다. 수재보험료(재보험료)는 2020년 40억1800만엔(약 340억원)에서 지난해 20억6400만엔(약 180억원)으로 감소했으나 같은 기간 원수보험료는 43% 뛰었다. 올해 매출액 목표는 지난해보다 9% 성장한 194억200만엔(약 1670억원)이다.



이같은 성장으로 일본지사는 현대해상 해외매출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다. 2021년과 2022년 현대해상의 해외매출액(수입보험료 기준)에서 일본지사 비중은 각각 47%, 42%를 차지했다. 지난해엔 엔저·강달러 현상으로 일시적으로 36%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해외매출 1위를 유지한다.

현대해상은 국내 손보사 중 유일하게 일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76년 일본에 진출, 올해로 48주년을 맞았다. 일본 손보시장은 외국계 보험사가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환경이다. 도쿄해상·MS&AD(삼정주우해상)·손보재팬 3대 손보사가 90%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나눠가졌다. 지진 등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 손해율도 좋지 않다. 실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대부분 외국계 보험사가 일본 시장에서 철수했다.



틈새시장 '프론팅 계약' 비중 절반 가까이로 키워…유명 명품 브랜드도 고객사로
현대해상 일본지사 손해율/그래픽=김다나현대해상 일본지사 손해율/그래픽=김다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성장을 거듭한 배경에는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현대해상이 일본에 뿌리를 내릴 때만 해도 재일교포 사업가가 일본 사회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현대해상은 이들을 상대로 화재보험을 팔면서 일본 내 비즈니스를 구축했다. 이로 인해 1990년대까지 일본지사 고객 대부분은 1·2세대 재일교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해상을 찾는 재일교포 고객이 줄어들었다. 일본에서 활동범위가 넓어지면서 재일교포 사회의 결속력이 느슨해졌고 국내 손보사 상품에 가입하려는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적어졌다. 현재 재일교포 고객으로부터 나오는 매출은 과거 대비 크게 줄어들었다.


현대해상은 더이상 재일교포 사회에만 의존할 수 없게 되자 새로운 먹거리를 발 빠르게 모색했다. 현대해상이 2000년대 초반부터 확장해나간 사업은 프론팅계약(Global Account)이다. 프론팅계약은 보험계약을 한 뒤 현지에서 영업허가를 받지 못한 외국 보험사에 재보험 형태로 보험계약을 넘겨주는 비즈니스다.

현대해상 프론팅계약의 주요 고객은 미국·유럽 등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이다. 현대해상은 일본 보험라이선스를 보유했지만 미국이나 유럽을 기반으로 한 보험사는 대부분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영업하는 미국·유럽의 다국적 기업이 자국 보험사 상품에 가입하려 해도 자국 보험사는 일본 라이선스가 없기 때문에 가입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다국적 기업은 현대해상과 먼저 보험계약을 한다. 이후 현대해상이 해당 보험계약을 재보험 형태로 미국·유럽 보험사에 넘겨준다.



현재 현대해상은 프론팅계약의 매출비중을 절반 가까이로 끌어올린 상태다. 일본에 진출한 굴지의 명품브랜드도 현대해상과 보험계약을 했을 정도다. 김황태 일본지사장은 "재일교포 사회의 물건을 인수하기 어려워지는 시장 상황을 빠르게 캐치해 2000년대 초반부터 프론팅계약을 발굴하고 키워냈다"며 "자동차보험 등의 상품을 두고 일본 기업과 경쟁할 순 없었지만 현대해상만의 비즈니스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국내 손보사가 일본에서 모두 철수할 때 현대해상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손해율 낮추고 미래 먹거리 발굴…지속 성장 노린다
현대해상은 일본지사 물건의 손해율을 낮추는 것이 목표다. 일본지사가 보유한 계약은 △화재보험 45% △배상책임보험 30% △해상보험 10% △신용보험 10% 등으로 구분된다. 상당수가 화재보험 상품인데 일본지사의 화재보험 손해율은 지난해 1분기 52.55%에서 올해 1분기 39.12%로 불과 1년 만에 13.43%포인트(P) 떨어졌다. 전체 손해율도 같은 기간 44.50%에서 35.20%로 9.30%P 낮아졌다.

시장이 원하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중장기 과제다. 현재 현대해상 상품군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화재보험·배상책임보험·해상보험은 모두 전통보험에 해당한다. 그러나 최근엔 일본 시장에서도 기업간 상거래에서 지급불능 등으로 발생하는 손실에 대비하는 신용보험과 데이터유출 등 사이버 사고와 관련한 피해를 보상하는 사이버보험 등 새로운 형태의 스페셜리티 보험이 쏟아진다.



갈 길이 멀지만 현대해상 일본지사의 신용보험 파이는 조금씩 커진다. 일본지사의 신용보험 고객은 대부분 일본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이다. 항공사가 항공기를 구매·리스하기 위해 외국계 은행에서 받은 대출금에서 지급불능이 발생하면 현대해상이 이를 보상하는 구조다. 순수 일본계 기업의 물건도 일부 인수했지만 일본 3대 손보사의 영향력이 막강해 영업확장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현대해상은 외국계 기업 물건을 더 발굴해 신용보험의 경쟁력을 키울 계획이다.

김 지사장은 "44명인 일본지사의 인력으로 전통 보험시장에 매달려선 승산이 없다"며 "2000년대 초반 프론팅계약을 발굴한 것처럼 최근엔 신용보험을 차기 먹거리로 보고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용보험뿐만 아니라 신규 상품에 대한 연구를 거쳐 시장수요가 있는 상품을 빨리 출시해 고객을 확보하는 게 일본지사의 중장기 과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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