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권대희씨의 어머니인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가 2021년 9월 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성형외과 원장 A씨에 대한 혐의를 업무상 과실치가가 아니라 상해치사죄나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사진=뉴스1
담당 의사는 권씨를 두고 다른 환자를 살피기 위해 수술실을 떠났다. 중태에 빠져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권씨는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다가 저혈량 쇼크로 4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9월 8일 권씨는 달라질 모습을 기대하며 수술대에 누웠다. 그러나 11시간 뒤 119에 신고가 접수됐다. 권씨 어머니는 다음 날 새벽이 돼서야 연락받고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추석 연휴에 오겠다"며 집을 나섰던 둘째 아들은 의식 없는 채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의료진은 권씨의 출혈량이 3500cc였는데도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는 체중이 45kg인 성인 여성의 전체 혈액량과 같다. 간호조무사들은 피로 흥건한 바닥을 10여차례 밀대로 닦았다. A씨는 간호조무사에게 30분간 압박 지혈을 하도록 했다.
권씨가 피를 많이 흘려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의료진은 출혈로 혈압이 떨어졌다며 혈액대용제를 투여, 혈압이 일시적으로 회복되자 권씨를 방치하고 퇴근했다. 대학병원 이송 전까지 수혈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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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실로 옮겨진 권씨의 상태가 더욱 나빠져 119를 부를 때도 가족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권씨가 의식이 없어 중환자실에 입원시켜야 할 상황이 되자 성형외과 측은 동의를 받기 위해 권씨의 형에게 연락했다.
돌아오지 못한 아들…성형외과는 '무사고' 거짓 광고권씨는 49일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가 끝내 10월 26일 숨졌다. 그러나 의료 사고를 낸 성형외과는 여전히 '무사고'라는 거짓 광고를 내세우며 영업을 이어갔다. 권씨 어머니가 직접 고발한 뒤에야 광고가 내려졌다.
권씨 어머니는 성형외과 의료진을 고소했다. 그는 의료진 과실을 입증하기 위해 의무 기록지와 감정 결과지 등을 수백번 정독하고 수술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수천번 돌려봤다. CCTV 영상을 분과 초 단위로 세밀하게 기록한 표와 각종 자료를 경찰에 넘겼고,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와 의료법 위반 혐의로 피의자들을 검찰에 송치했다.
고(故) 권대희씨의 어머니인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가 2021년 4월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권씨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재정 신청을 통해 법원이 검찰 측에 기소 명령을 내려주길 바랐다. 그동안 매일 거리로 나가 법원과 대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했다. 법원은 권씨 어머니의 처절한 노력을 알아준 듯 피의자들에 대한 공소제기를 명했다.
1심 재판부는 피의자들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A씨에게는 징역형을 선고하고, 나머지 의사들에게는 벌금형과 금고형 집행유예를 내렸다. 권씨 어머니는 항소했고, 항소심에서는 1심보다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으나 의사들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1월 대법원은 A씨에 대한 징역 3년과 벌금 1000만원 선고를 확정했다. 나머지 의료진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의료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 형을 받아야 의사 면허가 박탈되는데, 이들의 의료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벌금형이 선고돼 면허는 박탈되지 않았다.
권씨 어머니는 선고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평범한 엄마로 살았던 제가 7년 동안 소송하면서 의견서와 탄원서를 92차례 제출했고, 국민 서명 탄원서를 3049장 제출했다"며 "1인 시위를 416일 하면서 거리의 투사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수술실 CCTV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제2의 권대희와 제2의 권대희 유족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환자 생명을 위협하는 유령 대리 수술과 공장 수술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7년간 소송 마무리…수술실 CCTV 의무화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는 사진./사진=뉴시스
전신마취나 수면마취 등으로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의 개설자는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 환자 또는 보호자가 요청하면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 영상은 30일 이상 보관해야 한다.
보관 연장 요청은 30일 이내여야 하고, 추가로 연장하려면 다시 요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영상을 열람하거나 받으려면 영상정보 열람·제공 요청서를 의료기관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지난달 기준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해야 하는 의료기관 2413개소에는 CCTV가 모두 설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의료기관이 수술실 CCTV 녹화 여부를 고지할 의무가 없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