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경찰청 전경/사진제공=제주경찰청
지난 3월15일 오후 9시, 제주경찰청 112 치안상황실에 신고가 접수됐다. 딸이 납치됐다는 신고였다. 야간근무를 하고 있던 제주경찰청 소속 김대현 경위는 지체 없이 통화내용 '공청' 버튼을 눌렀다. 상황실에 중년 여성의 떨리는 목소리가 퍼졌다. 직원들 이목이 쏠리고 대기하던 분석대응팀도 지원을 시작했다.
신고자 목소리는 격양됐다. 신고자를 진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수차례 "진정하시라" 말하자 신고자는 침을 한번 삼키고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학년 딸이 미국 시카고로 유학을 갔는데 대만에서 열리는 한 캠프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신고자는 대만행 비행기에서 딸을 납치했다는 범인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김 경위는 범인의 말에 넘어가 전화를 놓지 말라고 신고자를 설득했다. 김 경위는 가장 긴급한 상황에 쓰는 '코드 제로' 버튼을 눌렀다. 인근 지구대·파출소 경찰관에게 곧바로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그 순간 두려움에 횡설수설하던 신고자는 범인의 지속적인 협박에 전화를 끊었다.
"경찰에 신고했어? 머리 잘 돌아가네?" 범인이 전화를 끊고 피해 없이 상황이 종료됐다. 시카고 영사관과 공항 경찰에도 협조를 요청해 딸이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내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김대현 경위가 근무하는 모습/사진=본인제공
이 시각 인기 뉴스
김 경위는 "저도 울면서 살려달라는 아이 목소리에 감정적으로 흔들릴 뻔했다. 부모는 오죽하겠냐"며 "내 딸이었으면 나도 속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외에도 재활용 쓰레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는데 벌금을 내야 한다며 URL을 보내고 교통 범칙금이 나왔다며 링크를 보내는 경우도 매우 많다"고 했다.
가장 좋은 대책은 '의심'이라고 했다. 김 경위는 "제일 좋은 것은 결국 의심"이라며 "경찰에 전화할만한 긴급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언제든 신고해주시라"고 말했다. 이어 "112 상황실 직원이 상담을 직접 해주지 못하면 경찰에서 운영하는 피싱센터로 바로 넘어가기 때문에 일단 의심해보고 112 신고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김 경위는 어려서부터 진로 검사를 하면 군인이나 경찰이 적성에 맞는 직업으로 나왔다고 했다. 김 경위는 "경찰이 되기 전에도 여러 다른 일들을 했는데 매번 내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김 경위 목표는 '평범한 경찰'로 근무하는 것이라고 한다. 김 경위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거나 멋진 사람이 되기보다도 한 명의 경찰로 오래 남고 싶다"며 "체력이 허락하는 한 퇴직할 때까지 '경찰'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은퇴하고 '저 사람 참 괜찮은 경찰이었다'라고 기억되고 싶은 게 전부"라고도 했다.
김 경위는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아버지기도 하다. 그는 "또 다른 목표가 있다면 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라며 "실습생 때부터 '어떤 경찰이 되겠냐'는 질문에 큰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아내를 생각하며 늘 다짐했던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진=본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