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사 일어나면 어쩌려고 "과잉보호" 눈총…유세현장 투입된 경찰들

머니투데이 김지성 기자 2024.04.03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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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일주일여 앞둔 2일 세종시 나성동에서 유권자들이 한 정당의 지원유세를 보고 있다. 2024.04.02. ppkjm@newsis.com /사진=강종민[세종=뉴시스] 강종민 기자 =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일주일여 앞둔 2일 세종시 나성동에서 유권자들이 한 정당의 지원유세를 보고 있다. 2024.04.02. [email protected] /사진=강종민


# 경기 한 파출소 소속 A 경사는 모 정당 대표가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의 유세를 지원하러 나왔을 때 유세 현장 주변에서 교통 신호를 조정하는 데 투입됐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시간대였지만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 서울 한 경찰서 경비과 소속 B 경감은 최근 유력 정치인이 선거 유세를 나온 현장에 배치됐다. 하지만 환영받지 못했다. B 경감은 경호를 위해 정치인과 주민 사이를 가로막자니 과잉보호라는 지적을 받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먼 거리에서 경호하기엔 위험 요소가 있어 난감했다.



4·10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되면서 경찰들이 유세 현장에 본격 배치된다. 사전투표를 3일 앞두고 선거가 과열 양상을 띄면서 경력 투입이 당연시되는데 일부 현장에선 과도한 인력 동원으로 치안 공백이 생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인 보호를 위한 경호 행위가 소통을 방해해 불필요하다는 지지자들의 볼멘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정치인도 유권자도 반기지 않는 경찰…"울며 겨자 먹기"
올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등 정치인에 대한 강력 범죄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찰은 '주요인사 신변보호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주요 정당 대표를 비롯해 정당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정치인에 대한 신변 보호에 나서고 있다.



엄중한 분위기 속 선거 과열 양상까지 더해지면서 경력 투입이 당연시되나 일선 경찰들 사이 난감하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거리 유세의 경우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 스킨십이 중요하다. 근접 경호가 어려울뿐더러 혹여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자칫 모든 책임이 경찰에 쏠릴 수 있어 부담도 크다는 것이다.

최근 유세 현장에 투입된 서울 한 경찰서 소속 C 경사는 "유명 정치인이 아니더라도 요청이 있으면 신변 보호 지원을 나가고 있다"며 "정작 현장에 나가면 정치인 가까이 경찰이 못 오게 해 경호에 어려움이 있고 작정하고 달려드는 범인을 막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경찰이 잘 해도 욕먹는 일이라 지원 근무를 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B 경감도 "앞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경각심이 높아져 현장에 더 많은 경력이 배치되고 있다"며 "막상 현장에서는 정치인이나 지역 주민들이 경찰을 달가워하는 분위기는 아니라 사복으로 갈아입고 경찰 티가 나지 않게 움직이고 있다. 본연 업무 외 근무가 추가되니 부담도 당연히 있다"고 했다.


(광주=뉴스1) 김태성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광주 송정역에 도착해 경찰 호위를 받으며 역을 나서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이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다. 2024.1.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광주=뉴스1) 김태성 기자(광주=뉴스1) 김태성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광주 송정역에 도착해 경찰 호위를 받으며 역을 나서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이날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다. 2024.1.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광주=뉴스1) 김태성 기자
민생 치안 '공백' 우려…"경찰, 개인 후보자 사설 경비처럼 활용"
정치인 유세 현장에 경력이 동원되는 만큼 본래 관할하는 지역에서 민생 치안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한 경찰서 형사과 소속 D 경감은 "경비과는 당연히 나가고 경비과 인원으로 부족하니 각 과에서도 경력이 동원된다"며 "필수 인력은 남겨놓지만 요즘엔 하루가 멀다고 현장에 나가야 해 피로도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경기 파출소 소속 A 경사는 "파출소에 순찰차가 몇 대 없는데 이걸 몰고 종일 유세 현장에 나가 있으니 원래 관할하는 구역에 신고가 들어오면 순찰차가 부족해 제때 나갈 수 없게 된다"며 "신고가 밀리면 결국 다른 지구대, 파출소에서 순찰차를 지원해 돌려막는 꼴이 된다"고 했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일부 정치인을 상대로 한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세 현장에 경찰이 동원되는 추세"라며 "그렇게 빠진 경력이 제대로 보충되지 않으면 민생 치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경찰이 개인 후보자의 사설 경비처럼 활용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정당 차원에서 민간 경비를 고용하고 여기에 경찰이 협력하는 식으로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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