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어린시절 누구나 눈이 짓무르도록 본 동화 ‘신데렐라’의 요약이다. 굳이 ‘신데렐라’에 비할 필요가 없다. 누추한 바닥에서 고생하던 여자가 화려한 배경에 왕자(또는 재벌)를 만나 팔자를 고치는 이야기는 한국 드라마의 근간과도 같았다. 필수적으로 여기에서 나오는 갈등은 양념이자, 시련을 딛고 여주인공이 일어서고 남자 주인공 역시 개과천선을 하는 내용은 주재료와 같다.
‘눈물의 여왕’은 지난 9일 첫 방송 돼 2회 방송 만에 방송가의 화제성을 빠르게 움켜쥐었다. 시청률은 1회 5%대(이하 닐슨 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에서 8%대 후반으로 수직상승했고, 각종 화제성 지표에서도 마른 들판에 불이 일어나듯 존재감을 넓혔다. 코믹을 가미해 기존 클리셰를 유쾌하게 뒤트는 박지은 작가의 필력에 마치 맞춤인 듯한 김수현, 김지원 두 주연의 연기력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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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의 캐릭터를 포함해 모든 것이 기존의 클리셰와 반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꿋꿋하고 인간미가 있는 여자 주인공들의 모습은 모두 백현우 역 김수현에게 흡수됐다. 홍해인의 집은 성(性)역할도 바뀌어 사위들이 모여 제사음식을 만들고, 심지어 후계자의 성(姓)씨 역시 모계유전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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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지향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는 잘 모르는 남녀가 만나 서로를 모르는 상황에서 심지어 초반에는 반목하고 대결하지만, 서서히 서로의 공통분모를 알고 아픔을 알아간다. 하지만 ‘눈물의 여왕’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난 3년 차 부부가 소재다. 이혼을 예감하고 심지어 남편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만, 아내의 시한부 사실을 알고 나서 미묘하게 변하는 이들의 관계가 포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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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은 반쯤 뜬 눈과 차가운 표정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건조한 발성으로 홍해인의 나른함과 귀찮음 그러나 그 안에 스며들어있는 욕망과 열정을 표현한다. 그는 가끔 남편을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인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 안에는 재벌가에서 자라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못한 과거가 숨어있으며, 심지어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나 자신의 형제 생사에 영향을 준 큰 사건도 깃들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지은 작가는 홍해인이 매몰찬 말을 한 다음에는 반드시 그가 돌아서 혼자 웃는 장면을 추가해 홍해인을 보는 이들에게 숨 쉴 공간을 마련한다.
겉으로는 차갑지만, 속으로는 조금씩 남편의 진가를 알아가는 아내의 캐릭터. 이러한 복잡미묘한 면모는 김지원의 어느새 성숙한 연기력으로 충분히 채워진다. 2010년 광고를 통해 ‘롤리팝걸’ ‘오란씨걸’로 이름을 알린 그는 2013년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에서 유라헬 역으로 처음으로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보인다.
마치 지금이 홍해인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모습의 유라헬은 지금 김지원의 홍해인의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이후 2016년 메인커플인 송혜교-송중기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던 KBS2 ‘태양의 후예’ 윤명주-서대영(진구) 커플의 주역으로. 군인정신과 로맨스가 뒤섞이는 어려운 캐릭터를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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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2022년 JTBC ‘나의 해방일지’는 김지원이 하나의 배우로서 완성형을 나아갈 수 있는 발걸음이 됐다. 바싹 마른 건조한 일상 속에서 해방에 대한 열망이 큰 염미정을 소화하면서 그는 표현을 극도로 절제하면서도 울림을 주는 연기를 할 수 있게 됐다. 구씨 역 손석구에게 “날 추앙해요”라고 전한 대사는 큰 유행어가 됐다. 그 나이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은 비로소 김지원이라는 틀에서 완성됐다.
이렇게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콘트라스트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단계까지 이른 김지원에게 다시 돌아간 ‘차가운 여자’ 홍해인은 과거 유라헬을 떠올리는 ‘회귀’의 느낌을 준다. 스스로도 배우로서 처음 자존을 깨닫게 된 시절, 그 시절 캐릭터가 자라난 캐릭터를 연기하며 그는 다시금 그의 10년 성장을 증명한다.
벌써 ‘눈물의 여왕’은 박지은 작가의 대본과 상대역 김수현의 연기력, 김갑수와 정진영, 이미숙, 나영희, 박성훈, 곽동연, 이주빈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빠르게 히트작의 대열에 들어가고 있다. 연기도 되지만, 흥행도 된다. 그것도 기존의 관념을 뒤집은 ‘백마 탄 공주’의 캐릭터로. 김지원의 진정한 배우로서 ‘해방일지’는 빠르게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