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이별이 그리 쉬운가

머니투데이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2024.02.19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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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력이 흐려지면 결혼을 하고, 인내력이 줄어들면 이혼을 하고, 기억력이 떨어지면 재혼을 한다.' 어느 철학자의 냉소 섞인 조크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니나'의 첫 문장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로 시작한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가정이 불행해지고 이혼을 한다. 우리나라의 이혼건수는 9만3000건으로 혼인건수 19만2000건의 절반수준에 육박한다(2022년). 다행인 것은 이혼건수가 2003년 17만건 이후로 줄곧 감소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결혼식 주례사의 단골문구인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나 서양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till death do us part)가 이젠 더 이상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인지도 모른다.

'디커플링'(Decoupling), 같이 잘 지내다 헤어져 따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으로 한 나라의 경제가 세계 경제흐름과 다른 경제흐름을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탈동조화'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해 국가간 경제적 이별이다. 과거에 진행된 대표적인 디커플링은 일본의 디커플링이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의 평가절상을 계기로 일본 경제는 소위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 1989년 말 일본 닛케이지수는 3만8957엔을 고점으로 2008년 8월 6994엔까지 82% 이상 하락했다. 반면 미국은 같은 20년 동안 S&P500지수가 4배 이상 상승세를 보였다.



디커플링은 각국 경제정책의 변화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2010년 이후 진행되는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은 사실 글로벌 패권전쟁의 성격이 짙다. 신냉전 성격의 미국과 중국 패권경쟁이 무역전쟁으로 번지면서 첨단산업을 보호하는 자국중심주의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이어지며 경제적 디커플링이 시작됐다. 미중의 패권경쟁이 본격화한 2015년 이후 중국 상하이지수는 -44%로 반토막 났지만 미국 S&P500지수는 144%나 상승해 5000선을 넘어섰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2021년 중반 이후 미국과 일본은 인플레이션 우려 속에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기간에 일본 닛케이지수는 40% 상승했고 미국 S&P500지수는 15% 상승한 반면 한국 코스피지수는 20% 이상 하락했다. 일본은 엔저로 수출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경상수지 흑자규모가 92%나 증가했다. 엔저와 초저금리로 주식투자의 매력도가 높아 주가상승으로 이어졌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중반까지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졌고 경제성장률이 1.4%를 기록하는 등 펀더멘털 여건이 좋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디커플링의 원인인 높은 중국 의존도와 글로벌 공급망에서 어려움이 해소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는 것이다. 우선 수출 상대국 1위가 20년 만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여 탈중국화가 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아울러 반도체 등 우리의 핵심산업이 살아나면서 올해 무역수지와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된다. 최근 2년여 진행된 디커플링은 사실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로 촉발된 것이 아니다. 이별이 그리 쉬운가? 우리의 인내력은 충분하며 이제 우리도 비슷한 이유로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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