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안락사 예정이었던 강아지 '홍삼이'가 환히 웃는다. 혓바닥을 내밀고 눈은 동글동글 보드랍다. 이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건, 많이 믿고 좋아하는 가족이란 것. 잘 알고 있다. 주사 하나에 사라질 뻔했던 이야기가 이리 빼곡히 담길 수 있었던 건, 외면하지 않고 살린 마음, 단지 그 하나 덕분이란 걸./사진=홍삼이 보호자님
꼬물이들 엄마는 까만 믹스견, 유기견이었다. 바깥에 묶여 살다가 버려졌다고 했다. 아빠는 진돗개였다. 작은 생명들은 살려고, 차가워지는 아스팔트 바닥을 기어 본능적으로 젖을 물었다. 2020년, 쌀쌀해지던 가을 날이었다.
이를 본 누군가 신고했다. 엄마와 꼬물이들은 시 보호소로 가게 됐다. 이어 보호소에서 위탁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자그마한 몸으로 그 독하고 무섭다는 홍역을 이겨낸 강아지, 홍삼이. 그리 힘든 병을 이겨냈는데, 맞아줄 가족 하나 없어 안락사가 예정돼 있었다./사진=홍삼이 보호자님
홍삼이는 살아날 확률 10% 안에 들어가 살아 남았다. 엄청난 홍역을 끝내 이겨낸 거였다.
힘겹게 살아난 작은 존재. 이젠 가족만 찾으면 됐다. 홍삼이가 몸과 맘을 회복할, 따뜻한 집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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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입양 문의가 없었다.
위탁 병원엔 이미 28마리의 유기 동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버려진 동물 구조가 계속됐다.
잘 살아남은 홍삼이에게 '시한부 선고'가 내려졌다. 12월 25일, 안락사가 예정된 날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공고 보고 맘 아파한 부부가 있었다
SNS에서 자주 보이는 '안락사 확정'이란 유기견 공고 글. 홍삼이도 그 대상이었다. 끊임없이 버려지고, 끊임없이 들어오기에. 입양갈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을 정도로. 쉽게 데려와 쉽게 버리는 시스템은 여전하다./사진=홍삼이 보호자님
그 무렵 소은씨는 임신해 새 생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은씨 남편이 갑자기 이걸 보라며 그를 불렀다. SNS에 뜬 안락사 공고였다. 거기에 홍삼이가 있었다.
'홍삼이는 치사율 100%에 임박하는 홍역이란 무서운 병을, 작은 몸으로 힘겹게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어 안락사 대상에 오르고 말았습니다. 절대 오지 않길 바랐던, 원치 않는 선택을 해야만 하는 시간이 와버렸습니다.'
강인하게 싸워낸 아이를 품어달라고, 공고엔 그런 간절한 맘이 담겨 있었다. 품에 안긴 홍삼이는 아무것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사진 하단엔 '내일 안락사 확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소은씨는 맘이 아팠단다. 홍삼이가 지금은 작지만, 대형견이 된단 걸 알았기에 고민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생각이 이랬다.
"홍삼이가 어렵게, 어렵게 아픈 병을 이겨냈는데, 또 죽어야 한단 게 속상했어요. 임신 중이라 반대도 많았지만, 그걸 무릅쓰고 살려야겠단 생각이 컸지요."
작은 개는 보호자 품에…유기견들은 철창에 갇혀 있었다
어쩐지 긴장한듯한, 작았던 홍삼이의 모습. 그래도 가족이 생겼으니 점점 좋아질 거였다./사진=홍삼이 보호자님
"동물 병원(시 위탁 보호소)에선 처음 보는 모습이었지요. 철창 같은 데에 홍삼이만한 친구들이 갇혀 있는 거예요. 보호자가 있는 강아지들은 품에 쏙 안겨 주사를 맞으러 오는데, 대비되어 맘 아팠지요."
그날 홍삼이도 처음 만났다. 첫 인상이 어땠느냐 묻자 "그냥 해맑았다"며 소은씨는 웃었다. 애기여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고.
사랑 받으면 이리 웃을 수 있게 된다. 유기동물 이야기를 쓰며 배운 틀림 없는 한 가지는 바로 그거였다. 저마다 시간이 다르더라도 다 그랬다./사진=홍삼이 보호자님
그리 데리고 나왔다. 홍삼이에게 바깥 공기를 오랜만에 쐬어 주었다. 차에 태우자 홍삼이는 모든 게 신기한듯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다. 그런 홍삼이를 위해 소은씨 부부는 차창을 살짝 열어주었다. 킁킁, 홍삼이가 열심히 냄새를 맡았다.
홀로 쓸 수 있는 반려견 운동장을 빌리면, 홍삼이는 이리 신나서 뛰어다닌다./사진=홍삼이 보호자님
어린 딸과도 정말 잘 지내…"기다려주면 괜찮아요, 너무 순하고 똑똑한 홍삼이"
홍삼아, 기분 좋구나. 살아서 웃을 수 있어서 나도 참 좋다./사진=홍삼이 보호자님
그러니 바깥 세상에 겁을 내었다. 현관에서 잘 안 움직여 간식으로 유도했다. 어렵게 바깥으로 나갔는데, 한 비정한 할아버지가 "이렇게 큰 개를 데리고 나와!"라고 손짓을 하며 버럭버럭 소릴 질렀다. 홍삼이는 놀라고 겁 먹고 주눅들었다.
잘 놀고 코오 잠든 홍삼이. 사랑스럽다./사진=홍삼이 보호자님
"그게 좀 많이 미안하더라고요. 제가 주눅 들어서 같이 주눅든 것 같아서요."
봄엔 진달래꽃을 보고 내음을 맡고. 세상엔 누려야 할 아름다운 게 이리 가득한데, 길에서 태어나 고생만하다 안락사를 당할뻔했단 게. 안도가 되면서 슬프다. 슬픈 건, 지금도 어디선가 버려지고, 가족을 못 만나 죽어가고 있단 걸 알기에./사진=홍삼이 보호자님
산책도 잘하는 홍삼이. 보호자 곁이라면 그저 좋다./사진=홍삼이 보호자님
소은님 딸 아이랑도 이리 잘 지내는 홍삼이. 어찌나 의젓하고 착하고 순한지./사진=홍삼이 보호자님
"유기견이라고 편견이 심한 것도 잘 알아요. 그런데 유기견이라 어떤 건 없고, 더 착한 아이들도 많고요. 입양을 한 뒤에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충분히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더라고요."
개린이집에서 멋지게 한 컷. 예쁘다, 홍삼아./사진=홍삼이 보호자님
친구야, 거기 있지 말고 나랑 놀자. TV 속 개를 빤히 바라보는 홍삼이./사진=홍삼이 보호자님
우린 이리 좋은 가족이 됐다고. 크리스마스날에./사진=홍삼이 보호자님
처음 홍삼이를 살리러 시 보호소 병원에 갔던 날. 소은씨와 동행한 이들이 있었다.
소은씨의 친정 엄마, 그리고 동생이었다.
둘은 소은씨 집에 자주 오진 못한단다. 가끔 방문하면 홍삼이가 그리 좋아한단다.
엄마 품이 제일 좋지요, 따뜻하고./사진=홍삼이 보호자님
죽기 전날, 자기를 살리러 와준 세 사람.
그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반가움을 표하는 거였다. 3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는 없다고,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홍삼이네 가족,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무탈히 안녕한 날들이 계속되기를./사진=홍삼이 보호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