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했던 2021년 봄. 엄마도 없이 버려져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강아지. 임시보호하며 아껴주던 두 명의 좋은 이와, 가족으로 맞아준 좋은 사람 덕분에 많은 게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대길이가 이리 환하게 웃는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봄이라고 모든 존재가 다 포근한 건 아녔다. 같은 거리엔, 겁먹은 표정으로 종종거리던 꼬물이들이 있었다. 자주 두리번거리고 쳐진 귀를 쫑긋거렸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작은 강아지를 길에 버린 거였다. 첫번째 임시보호자 집에서 보호 받던 대길이(당시 이름은 솔잎이). 슬리퍼에 고개를 얹고 곤히 잠들었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누군가 그 광경을 봤다. 여기 강아지들이 있어, 버려졌나봐, 등의 말을 했다. 세 꼬물이들은 다음 거처로 옮겼다. 계속 안녕할만한 곳은 아녔다. 유기견 보호소였다.
유기견 보호소에 있을 때 대길이(솔잎이)와 풀잎이, 꽃님이. 셋이 함께 버려져 있었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대길이의 꼬물이 시절. 첫번째 임시보호를 했을 때 발라당 뒤집은 모습. 견권 보호를 위해 중요한 부분은 모자이크를 했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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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이 흘렀다. 애정으로 솔잎이도 많이 자랐다. 귀도 쫑긋해지고 꼬리도 길어지고 갈색 눈물자국도 많이 옅어졌다.
첫번째 누나가 갑작스레 해외로 가게 됐다. 속상한 이별이었다. 다행히 이어서 돌봐줄 두번째 누나를 만났다. 역시 임시보호였다.
가을에서 이듬해 봄까지, 사진 150장 올리던 '마음'
두 번째 임시보호를 했을 당시 대길이의 모습./사진=대길이 두 번째 임시보호자님(@puding_diary)
솔잎이 두 번째 누나도 눈물자국을 더 없애기 위해 애썼다. 여러 샘플 사료를 먹여가며 솔잎이에게 맞는 걸 찾았다. 나중에 만날 가족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매일을 꼼꼼히 기록했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솔잎이 옷도 도톰하게 바뀌었다. 터그 놀이를 즐겼고 산책 나가면 바스락대며 낙엽에 뒹굴기도 했다. 발라당 누워서 잠을 잤다. 형이 요리하면 밑에서 뭐 하나 나올까 오매불망 기다렸다.
"눈나, 재택근무 제대로 하고 있어?" 감시하는 대길이(당시 솔잎이)./사진=대길이 두 번째 임시보호자님(@puding_diary)
임시 보호를 하며 입양 홍보 글도 부단히 올렸다. 소소한 일상 사진과 함께, 입꼬리 등 매력 포인트와 함께, 솔잎이 가족을 찾아주려 애썼다. 올린 사진이 150개나 되었다. 좋은 가족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그리 컸다.
솔잎이에서 '대길이'로, 평생 가족이 생겼다
몇 달의 기다림 끝에 가족이 생기던 날. 케이크에 초를 꽂고 축하하며. 얼마나 기쁜 일일지 모르겠다./사진=대길이 두 번째 임시보호자님(@puding_diary)
솔잎이가 태어났고 버려졌던 계절, 봄이 되었다. 봄은 봄이되 같은 봄은 아녔다. 곁에 사랑하고 돌봐주는 이가 있는 새로운 봄이었다.
그 무렵, 민서씨는 우연히 솔잎이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단다. 그는 딩크를 결심한 신혼이었다.
민서씨가 원래 키우던 강아지 대추(오른쪽)와 대길이(왼쪽). 둘이 닮아서 한눈에 반했단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오래 입양이 안 됐다는 말. 처음엔 유기견이란 걸 알고 안타깝고 불쌍한 맘도 들었단다. 가족으로 맞고 싶었다. 민서씨 남편은 집이 오피스텔이라 작다며 입양을 반대했다. 일주일을 싸운 끝에 남편이 져줬다.
대길이 입양을 반대하던 대길이 형(민서씨 남편) 근황./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말썽쟁이에서 '착한 강아지'로…"훈련하다 흠뻑 정들었지요"
음, 말썽쟁이였던 건 맞는듯 하다. 대길이를 더 많이 알고 훈련하니, 착한 강아지로 바뀌었다고. 스스로 대견하단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밤새 짖고, 외출하면 하울링하고, 리드줄을 물고 길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바닥 쓰레기를 입에 넣고, 간식을 주면 손도 함께 깨물고,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고. 평화롭지 않은 한 달이 이어졌다.
"잠도 잘 못 자고 예민해져 있었지요. 그래도 할 수 있는데까지 꼭 해보자, 맘 먹고 이 악물고 훈련했어요."
대길이가 속 썩이던 시절. 범상치 않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봄날은 오는 거니까, 대길이에게도. 아껴준 많은 이들 덕분에. 봄에 버려진 대길이가 예쁜 봄 사진도 찍는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반려견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대길이./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눈밭에서 민서씨를 향해 신나게 또 반갑게 달려오는 대길이. 나 이렇게 잘 뛴다고, 사랑스럽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반려견 수영장에 데려갔는데, 물에 넣었다고 삐졌단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대길이의 '분리 불안'을 나아지게 해주려 훈련할 때였다. 외출 후 대길이가 잘 지내는지 보려고 홈 CCTV를 켜놓고 나갔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유행하던 때, 456이 적힌 대길이 옷./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민서씨는 남편과 그런 대화를 했다.
잠에 빠져든다. /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왜? 대길이가 막상 안 우니까 서운해?"(남편)
활짝 웃는 대길이. 민서씨 부부와 달리기를 실컷 한 뒤 한 컷./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
그리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가족이 된 거였다.
대길이와 누나와 형의 가족사진. 모른척하지 못하는 따뜻한 마음, 그걸 가진 사람이 있었고, 그로 인해 한 존재의 삶이 다 바뀌었다./사진=대길이 보호자 민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