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자만 보면…'뚜뚜'는 걷다가 멈춘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3.08.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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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마리의 유기동물 이야기 - 열네 번째, 뚜뚜] 앞다리로만 걸었던, 입양 안 돼 '안락사' 될뻔했던 강아지…"성대 수술 받았나 싶었을 만큼 조용했던 강아지, 이젠 우렁차게 짖으며 집 지켜주지요"

편집자주 이제는 소중한 가족이 된, 유기동물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 드립니다. 읽다 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가면 좋아지고, 그리 버려진 녀석들에게 좋은 가족이 생기길 바라며.

산책하다가 잠시 쉬는 뚜뚜. 보호자인 은희씨를 바라보는, 뚜뚜의 믿음 가득한 눈빛./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산책하다가 잠시 쉬는 뚜뚜. 보호자인 은희씨를 바라보는, 뚜뚜의 믿음 가득한 눈빛./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킁킁거리며 산책하던 '뚜뚜'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섰다. 은희씨는 의아해 주위를 둘러봤다. 한 젊은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뚜뚜는 젊은 남자만 지나가면 물끄러미 바라봤었다. 좋아하던 산책도 잠시 잊고서.



몇몇 일들로 은희씨는, 뚜뚜를 몰랐던 시절을 짐작했다. 예를 들면 화장실 휴지를 갈 때 말이다. 희한하게 빈 휴지심만 보면 좋다고 흥분하고 난리였다.

뚜뚜는 전자레인지 소리도 무척 좋아했는데, 다 돌렸단 '띵' 소리만 나면 은희씨 다릴 긁고 콩콩 뛰었다. 그 안의 음식을 달라는 거였다.



은희씨가 말했다.

"뚜뚜의 과거를 유추할 수 있겠더라고요. 젊은 남자가 보호자였나봐요. 휴지심을 장난감처럼 던진 것 같고요.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음식들을 뚜뚜에게 준 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그러니까, 뚜뚜도 처음부터 유기견이었던 건 아녔다.


공고번호 : 전남 - 광양 - 2018 - 00117
2018년 포인핸드에 올라왔을 당시 뚜뚜 모습. 뒷다릴 못 쓴다고 버려진 걸로 추정이 됐다. 살 수 있는 기한은 고작 2주 뿐이었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2018년 포인핸드에 올라왔을 당시 뚜뚜 모습. 뒷다릴 못 쓴다고 버려진 걸로 추정이 됐다. 살 수 있는 기한은 고작 2주 뿐이었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2016년에 태어난 뚜뚜는, 예전 주인이 키운지 얼마 안 돼 버려졌다.

다시 발견된 건 2018년, 전남 광양에서였다. 길에서 얼마나 헤맸을지 몰랐다. 그리고 뚜뚜는 뒷다릴 끌며 걷고 있었다.

아마도 다리가 불편하단 이유로 길바닥에 버려진 모양이었다. 두 앞다리에 의지해, 겨우 살아남은 작은 생명.

뚜뚜는 구조돼 전남 광양 유기견보호소로 갔다. 공고번호가 생겼다. 전남-광양-2018-00117. 2살이었고, 몸무게는 1.6㎏밖에 안 됐다.

'쭈쭈'를 잃고 울다가, '뚜뚜'를 만났다
입양이 완료됐단 표시로 바뀐 뚜뚜. 여전히 공고 중인 개들이 너무나 많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입양이 완료됐단 표시로 바뀐 뚜뚜. 여전히 공고 중인 개들이 너무나 많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그 무렵 은희씨 가족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가 키우던 16살 노견 '쭈쭈'를 돌봤었는데, 하늘나라로 갔다.

쭈쭈를 화장한 강아지 장례식장. 거기엔 커뮤니티가 있었다. 비슷한 상실을 겪은 이들의 위로로 마음을 달랬다.

그 커뮤니티에 다급한 글이 하나 올라왔다.

"광양 가야로 근처서 발견된 1.6킬로 요크셔테리어를 구해주세요. 안락사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임시보호처를 구해요."

그게 '뚜뚜'였다. 공고 마지막 날인 2018년 5월 14일이 다 되도록 입양이 안 된 거였다. 귀엽다며 문의는 많았으나, 뒷다리를 수술해야 한단 말에 다들 거절했단다.

무지개다릴 건넌 쭈쭈와 꼭 닮았던 뚜뚜. 은희씨 어머니는 뭔가에 홀린듯 보호소에 전화를 걸었다. 고민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앞다리로만 걷던 뚜뚜가, 산책할 때 뛰게 됐다
힘든 수술을 잘 견뎌준 뚜뚜./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힘든 수술을 잘 견뎌준 뚜뚜./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2018년 5월, 뚜뚜는 은희씨 집에 오게 됐다. 임시보호가 시작된 거였다.

뚜뚜는 뒷다릴 전혀 쓰지 못했다. 슬개골 탈구와 허혈성 대퇴골 괴사. 뒷다리 수술이 불가피했다. 중성화 수술도 함께 진행이 됐다.

수술 직후 뚜뚜 모습. 아직은 재활이 필요한 시기였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수술 직후 뚜뚜 모습. 아직은 재활이 필요한 시기였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힘겨운 수술을 잘 견뎌준 뚜뚜는 힘없이 누워 있었다. TV 채널을 돌리려 리모컨을 들면 벌벌 떨었다. 등이 가려운 은희씨 아버지가 효자손을 들 때도, 눈도 못 뜨고 온몸을 웅크린 채 신음 소릴 냈다. 대변과 소변도 몇 달을 가리지 못했다.

그런 뚜뚜를 더 사랑했다. 은희씨 가족은 정성으로 작은 존재를 돌봤다. 잦은 병치레를 하는 뚜뚜를 위해, 은희씨 어머니는 강아지 간식 만드는 법도 배웠다. 그 마음을 알아서인지, 뚜뚜는 은희씨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강아지 껌을 제일 좋아한다고.

뒷다리를 끌며 앞다리로만 걷던 뚜뚜가, 이렇게 잘 뛸 수 있게 됐다. 기꺼이 가족으로 함께해준 이들 덕분에./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뒷다리를 끌며 앞다리로만 걷던 뚜뚜가, 이렇게 잘 뛸 수 있게 됐다. 기꺼이 가족으로 함께해준 이들 덕분에./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재활도 열심히 한 덕분에, 이젠 산책할 때 잘 뛸 수 있게 됐다. 가끔 몸을 털 때면 중심을 잘 못 잡고 옆으로 콩 넘어지곤 한다. 그럴 때면, 은희씨 어머니는 "내가 재활을 더 잘해줬어야 했나봐"라며 늘 자책한다고. 그러면 은희씨는 어머니에게 "앞으로 더 큰 사랑을 주면 돼. 아프지 않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라고 말한단다.

위에 있는 영상보다 더 빨리 걷는 '산책 천재' 뚜뚜./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위에 있는 영상보다 더 빨리 걷는 '산책 천재' 뚜뚜./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를 허벅지에 댑니다
맛있는 간식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입맛 다시는 뚜뚜./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맛있는 간식 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입맛 다시는 뚜뚜./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그리 세 달을 넘게 뚜뚜는 은희씨 가족과 함께했다. 은희씨가 말했다. "누군가의 집에 보내는 상상을 할 수 없더라고요." 뚜뚜가 비로소 가족이 된 거였다.
친구에게 선물 받은, 가방 달린 하네스를 입은 뚜뚜. "누나, 빨리와"라고 말하는듯 하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친구에게 선물 받은, 가방 달린 하네스를 입은 뚜뚜. "누나, 빨리와"라고 말하는듯 하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뚜뚜는 달라졌다. 수술이 끝나고 한 달 동안은 정말 조용했었다. 성대 수술을 받았나 싶을 정도였다. 의사 표현도 안 했다. 그러던 뚜뚜가 이젠 낯선 이에게 왕왕 짖는다. 누구보다 우렁차게, 가족을 지키겠다며. 함께 놀아달라고 보채기도 한다.
추운 겨울, 편안한 잠자리에서 이불을 덮고 곤히 잠든 뚜뚜. 예전엔 길에서 생활하며 얼마나 고단했을지./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추운 겨울, 편안한 잠자리에서 이불을 덮고 곤히 잠든 뚜뚜. 예전엔 길에서 생활하며 얼마나 고단했을지./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가족이 된 뒤엔 더 가까워졌다. 뚜뚜는 작은 머리를 은희씨 허벅지에 대고 서 있기도 한다. 쓰다듬어 달라는 거다. 집 현관에 들어가면 드러누워 배를 보여준다. 시간이 지날 수록 느낀다. 우린 정말, 너무나 가족이라고.
간식 시간은 언제나 즐거워. 맛있게 먹는 뚜뚜. 그래, 흘리면서 먹어야 제맛이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간식 시간은 언제나 즐거워. 맛있게 먹는 뚜뚜. 그래, 흘리면서 먹어야 제맛이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은희씨 아버지는 사랑스러운 뚜뚜를 보며 말한단다. 여기 유기견이 어디 있느냐고. 은희씨도 그에 동의한단다.

"처음부터 유기된 강아지는 없습니다. 그냥 강아지였는데 누군가 유기한 거지요. 유기견이라고 적응하지 못한단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처음부터 잘 적응할 거란 기대도 사람 욕심이고요. 살다보니, 그 아이도 우리에게 적응하고 저희도 뚜뚜에게 물들게 됐어요."
산책하다가 잠시 쉬는 뚜뚜./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산책하다가 잠시 쉬는 뚜뚜./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늦은 밤에도, 언제나 곁을 지켜주는 뚜뚜에게 남기고픈 말도 있다고 했다.

"뚜뚜야, 네 아픈 기억이 아직 잊혀지지 않았을지도 몰라. 다만 그 기억이 더는 아프지 않게 매일 남겨줄게. 아마 그걸로 괜찮을 거야."
겨울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포즈를 취한 뚜뚜./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겨울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포즈를 취한 뚜뚜./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뚜뚜는 잘 때 혓바닥이 나오고 배도 잘 뒤집어 보여주는 귀염둥이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뚜뚜는 잘 때 혓바닥이 나오고 배도 잘 뒤집어 보여주는 귀염둥이다./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겨울날 야무지게 따뜻한 옷을 입은 뚜뚜와 보호자 은희씨. 영원히 남기에 뚜뚜와의 사진도 남기고 싶었다고. 평범하고 안녕한 행복이 뚜뚜 가족들에게 평온히 이어지기를./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겨울날 야무지게 따뜻한 옷을 입은 뚜뚜와 보호자 은희씨. 영원히 남기에 뚜뚜와의 사진도 남기고 싶었다고. 평범하고 안녕한 행복이 뚜뚜 가족들에게 평온히 이어지기를./사진=뚜뚜 보호자 고은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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