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떴다"…대기업 직장인, 고깃집 사장님 본업 팽개치고 달려간 곳

머니투데이 김지은 기자 2023.12.07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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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덕 서울 강서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장이 119 알림 문자를 보고 있다. /사진=독자제공정진덕 서울 강서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장이 119 알림 문자를 보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119 알림] 서울특별시 강서구 내발산동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서구 한 사무실에서 만난 정진덕씨(58)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119 알림 문자를 보여줬다. 강서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 문자가 10개 넘게 있었다. 그의 본업은 광고인쇄사 대표. 그러나 이렇게 119 문자가 오는 순간 그는 지역 사회의 작은 영웅으로 변신한다.

그는 서울 강서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장이다. 대원으로 활동한지는 7년, 대장으로 근무한지는 4년이 넘었다. 의용소방대는 소방업무를 보조하는 민간 재난전문 봉사단체로 강서소방서 산하 조직이다. 올해 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는 41년 넘게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제35회 서울특별시 봉사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정진덕 서울 강서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장/ 사진=독자제공정진덕 서울 강서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장/ 사진=독자제공
의용소방대는 소방을 보조하고 안전 사고를 대비하는 일을 한다. 화재·재난 상황에서는 소방관들이 본연의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교통을 정리하거나 주요 장비를 지원한다. 평소엔 1주일에 2~3번 전통시장이나 동네 골목길을 방문해 소화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의용소방대는 소정의 봉사료만 나올 뿐 따로 보수가 나오진 않는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지역 봉사활동인 셈이다.

현재 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원은 총 220명이다. 30대 직장인부터 64세 퇴직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들 대부분은 평소엔 대기업 직장인, 대학원생, 낚시집 사장님, 고깃집 주인, 시설관리공단 주차관리요원이지만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마을 영웅으로 변신한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하던 일도 모두 내팽개치고 현장에 달려간다.



최근 서울 강서구의 재활용센터에서 화재 사고가 났을 때 정 대장 역시 바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그는 마트에 들려 간식과 물, 이온 음료를 쓸어담고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정 대장은 "문자가 울리면 대원들은 그 자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바로 출동한다"며 "대원들이 강서구 곳곳에 살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하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내가 가겠다'며 실시간으로 말한다"고 했다.

"알림 떴다"…대기업 직장인, 고깃집 사장님 본업 팽개치고 달려간 곳
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원들의 활동 모습/ 사진=독자제공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원들의 활동 모습/ 사진=독자제공
정 대장은 의용소방대가 이번에 대상을 받은 데는 꾸준히 한 자리에서 봉사한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저희가 한번 하면 끝까지 꾸준히 하는 특징이 있다"며 "20년 넘게 복지관에 일주일에 한 번씩 도시락 배달도 하고 있고 중증장애인 목욕 봉사, 취약계층을 위한 가정용 소화기 비치도 오랫동안 해왔다"고 말했다.

정 대장은 현재 의용소방대가 강서구 소속이긴 하지만 어려움이 있는 지역엔 어디든 찾아간다고 했다. 그는 "강릉에서 산불이 났을 때도 자발적으로 버스 대여해서 사비를 내고 봉사활동을 갔었다"며 "괴산에서 물난리 났을 때도 옥수수 밭에 잠긴 옥수수들을 다 뜯어서 마대에 담았다. 비가 많이 올 땐 고무장갑을 끼고 하수구들을 청소하곤 했다"고 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 중 하나로 서울 관악구 반지하 수해작업을 꼽았다. 그는 "현장에 가면 정말 바닥도 축축하고 도배도 다 떨어지고 곰팡이도 슬고 그렇다"며 "그 때 40명의 대원들이 찾아가서 도배도 다 하고 벽지도 바꿔드리고 짐도 다 들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그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 보단 많은 걸 해낼 수 있지 않으냐. 그래서 당연히 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알림 떴다"…대기업 직장인, 고깃집 사장님 본업 팽개치고 달려간 곳
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원들의 활동 모습/ 사진=독자제공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원들의 활동 모습/ 사진=독자제공
정 대장은 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는 지역 사회에서도 인기도 좋다고 했다. 대원들 모두 한 번 들어오면 꾸준히 참여하는 편이고 현재도 들어오고 싶다는 대기 인원이 줄 서있는 상황이다. 그는 "의용소방대는 다른 봉사 단체에 비해 조금 더 특별하다"며 "재난, 화재 현장에서 생명을 위한 일을 하지 않느냐. 재산과 생명을 지킨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목표는 더 많은 현장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정 대장은 "어디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우리가 달려가 봉사할 수 있다면 그만큼 뿌듯한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전국에서 활동하는 10만명의 의용소방대원들의 노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원들이 서울특별시 봉사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여한 모습/ 사진=독자제공 강서소방서 의용소방대원들이 서울특별시 봉사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여한 모습/ 사진=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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