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호, 사진=방송 영상 캡처
지난 10월 26일 시작된 시즌3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이제 3번째 시즌을 맞이하는데 자기복제의 한계를 넘을 수 있을까. 새로운 감동을 자아낼 수 있을까. 그런데 의구심이 무색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첫 회 시청률 4.8%로 시작해 2회 6.7%, 3회 7.3%, 4회 6.8%, 5회 7.1% 등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번에도 출연자들이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있는 건 그대로다. 개인전을 하다가 단체전을 하고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여전하다. 하지만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개인전 첫 순서로 나온 1호부터 선곡이 심상치 않았다. 그가 선택한 곡은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1991년에 발표된 곡이다. "제발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그대 없는 밤은 너무 싫어∼". 이별의 쓸쓸함과 그리움을 발라드 선율에 맞춰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호의 깊고 풍부한 가창력과 함께 잊고 있던 추억을 되살렸다. 빛과 소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 ‘샴푸의 요정’이지만 이 곡 또한 1990년대 K-팝의 감성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는 것 같았다.
59호,사진=방송 영상 캡처
통기타를 들고 수수한 매력을 뿜어낸 68호의 선곡도 놀라웠다. 1999년 롤러코스터가 발표한 ‘습관’. 롤러코스터 1집에 수록된 이 곡은 국내에 낯설었던 애시드 재즈(Acid Jazz)라는 장르를 알린 작품이다. "Bye Bye/Bye Bye Bye/얼마나 많이 기다렸는지/너를 내게서 깨끗이 지우는 날∼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거더군/아직도 너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면서∼". 원곡자인 보컬 조원선의 음색에선 프로페셔널한 분위기가 가득한데 부스스한 머리의 68호가 통기타로 뽑아내는 보이스에선 아마추어적이지만 맑고 순수한 감성이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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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가 건반을 두드리며 부른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집’도 1993년을 강타했던 노래다. 강렬한 외모의 박진영은 매우 파격적인 의상과 퍼포먼스, 통속적이긴 해도 섬세한 가사로 1990년대 K-팝 장르를 한층 더 풍성하게 했다. "니가 사는 그 집/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니가 타는 그 차/그 차가 내 차였어야 해∼".
이 밖에도 ‘싱어게인3’의 선곡에선 귀에 익거나 혹은 편한 20∼30년 전 K-팝이 쏟아져 시청자의 귀를 호강시키고 있다. 47호가 로맨틱한 감성의 끝을 보여준 김성호의 ‘회상’(1992년).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그녀는 조그만 손을 흔들고∼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 46호+56호가 듀엣으로 열창한 댄스곡 김건모의 ‘스피드’(1996년). "널 처음 본 순간 느꼈어/널 이제 내 여자로 만들고 싶어∼". 18호+26호가 하모니를 맞춘 조용필의 컨템포러리 장르 ‘슬픈 베아트리체’(1992년). "슬픈 그대 베아트리체/떠나버린 나의 사랑아∼사랑이여 사랑이여/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비록 탈락했으나 3호+52호가 합작한 김건모의 슬픈 발라드 ‘아름다운 이별’(1995년). "눈물이 흘러∼이별인 걸 알았어/힘없이 돌아서던/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듣고 있으면 가슴이 울리고 추억이 돋았다. 이런 명곡이 있었지 하는 감탄에 빠졌다.
실로 수많은 명곡들이 오디션 곡으로 선택됐는데 이들은 모두 1990년대를 관통하는 K-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56호, 사진=방송 영상 캡처
아울러 음악을 즐기는 연령층도 낮아지면서 1980년대 말부터 젊은 가수들이 대거 약진하고, 음악적 장르는 무척 다양해졌다. 발라드 변진섭, 댄스 김완선, 록 신해철, 팝 발라드 015B 등이다. 그리고 1992년 댄스와 록, 랩과 힙합을 버무린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다. 현대적인 K-팝의 시작이었다.
이즈음 SM엔터테인먼트 같은 K-팝 전문 기획사가 등장했고, 스타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생겨났다. 이들 전문가들의 손길을 거쳐 H.O.T, 젝스키스 같은 소위 1세대 아이돌이 탄생한 것도 1990년대 중후반이다.
즉, 1990년대는 다양한 형태의 K-팝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뜨겁게 혼재하는 시대였다. 장르로는 록, 발라드, 댄스, 트로트 등 한계가 없었고, 가수의 존재방식으로는 솔로는 물론 듀오나 혼성그룹, 아이돌 등 제한이 없었다.
아울러 1990년대 K-팝은 모든 세대 친화적이었다. 4050 세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였고, 당시의 K-팝을 겪지 못한 2030 세대에겐 전혀 새로운 장르이자 동시에 매우 신선한 레트로 센세이션이었다.
특히 요즘처럼 아이돌 그룹이 장악하다시피 한 국내 음악시장에서 1990년대 K-팝은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변화무쌍한 장르와 멜로디, 기승전결이 분명한 리듬과 가사, 그리고 무엇보다 청중들이 함께 따라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과 카타르시스의 매력이 굉장하다고 할 수 있다. ‘싱어게인3’는 바로 이것을 영리하게 엮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