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금 부담자 확대법의 함정

머니투데이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 2023.10.23 05:48
글자크기
네이버·카카오·구글·넷플릭스 등 부가통신사업자에게 세금 이외에 기금을 추가로 부과하려는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폐기됐다가 21대 국회 들어 다시 논의되더니 지난달 26일 이용자수,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정한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개정안으로 다시 발의됐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통신복지권의 재원이 방송통신발전기금인데 대형 부가통신사업자에게도 그 부담을 지우려는 것이다.

국회의 이 같은 시도는 기금 법리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조세는 국가의 일반적인 과제 수행을 위한 것으로 담세능력이 있는 모든 국민에게 부과되지만 기금은 특별한 과제 수행을 위한 부담금으로 관련이 있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부과되는 것이다.



개발부담금·농산물수입이익금처럼 공공사업이나 시설로 특별한 이익을 받은 이에게 징수하는 수익자부담금이 대표적이다. 공공비용을 유발하는 민간사업자에 부과하는 원인자 부담금의 일종인 기반시설설치비용·물이용부담금·환경개선부담금도 같은 경우다. 방송통신발전기금 역시 일반 조세가 아니라 이런 부담금이다.

본래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지불하는 사업자는 국가의 인허가를 받아 사업을 영위하는 방송사업자와 IPTV사업자다. 그래서 방송통신발전기금 부과는 국가가 특정 사업자에게 배타적 방송사업권을 부여해 발생하는 초과이익의 환수나 공공재인 전파자원을 이용해 수익사업을 영위하는 데 대한 요금의 성격을 갖는다.



하지만 부가통신사업은 주파수나 채널 같은 희소자원을 독점적으로 사용해 이익을 얻는 방식이 아니다. 법인세나 부가가치세 등 일반 조세에 추가해 부담금을 부과할 논거가 없는 것이다.

부가통신사업자의 문자·음성 서비스가 보편적 역무이고 통신복지라는 오해 역시 시정돼야 한다. 카카오톡 서비스는 라인톡이나 왓츠앱 등 경쟁 서비스로 대체될 수 있다. 기간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인터넷망처럼 모든 국민에게 제공되도록 국가가 강제 혹은 규제해야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얘기다.

복지 제공 주체인 국가가 복지부담을 기업에 부담시키려는 발상은 국가가 본연의 의무인 복지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책임을 국민, 즉 기업에 전가하는 것이다. 기업에 부당한 재정을 전가하는 행위는 투자 축소와 고용 축소로 이어져 오히려 국민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복지에 관한 국가의 역할과 국민이 세금을 내는 이유에 비춰볼 때도 국가의 방만한 세금 운용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헌법재판소 역시 부담금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일반적인 재정수입에 포함시켜 사용할 목적이라면 반드시 조세의 형식으로 해야지 부담금의 형식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부담금을 남용하면 조세를 중심으로 재정을 조달해야 하는 헌법상의 기본적인 재정 질서가 흔들릴 위험이 크다. 이렇게 되면 조세에 대한 헌법상의 특별한 통제장치도 무력화될 수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간한 부담금운용평가보고서는 부담금을 낮게 유지하는 것이 국가 재정운용의 견고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적·산업적 영향력이 크고 막대한 광고수입을 번다는 이유로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조세에 근간한 국가재정을 흔드는 행위이자 국민 신뢰에 어긋나는 길이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