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가서 편히 살아"…영화 '황해'처럼 살인청부 한 공직자 [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구경민 기자 2023.07.1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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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팽모씨의 범행 당시 CCTV./사진=MBC 영상 캡처팽모씨의 범행 당시 CCTV./사진=MBC 영상 캡처


2014년 7월10일. 검찰이 당시 서울시의회 의원 김모씨(당시 44살)와 공범인 팽모씨(당시 44살)에 대한 구속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국민 관심이 크고 사안 자체가 중대하기 때문에 수사 기간을 연장하기로 한 것이다.

'3000억원대 재력가 살인사건' '내발산동 살인사건'로 알려진 이 사건은 현직 서울시의원이 청부살인을 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큰 충격을 줬다.



수천억원대 재력가, 갑작스런 피살…왜?
2014년 3월 3일 새벽.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건물에서 송모씨(당시 67살)가 흉기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가 늦게까지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해 찾아온 피해자의 아내와 건물 경비원이 피해자의 시신을 최초로 발견했다. 시신은 둔기에 의해서 맞은 흔적이 있었으나 부검 결과 둔기가 무엇인지는 밝히지 못했다.

피해자 송씨는 사건이 발생한 건물을 포함한 인근 다세대 주택 및 웨딩홀 등을 소유한 3000억원대의 자산가였다.



경찰은 당초 범행 수법이 잔인해 원한 때문에 벌어진 사건으로 추정했지만 현장에 지문조차 남아 있지 않아 용의자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결정적인 증거는 모자를 쓰고 건물을 빠져 나가는 팽씨의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이었다. CCTV를 통해 신원을 조회한 결과 범인이 팽씨라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팽씨가 중국으로 도주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는 데 3개월 넘게 시간이 걸렸다. 결국 팽씨는 그해 5월 22일 중국에서 검거됐고 중국 정부는 6월 24일 팽씨를 한국으로 인도했다.

한국으로 송환된 피의자 팽씨는 자신의 살인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면서 미궁으로 빠질 뻔한 사건이 깔끔하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경찰은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팽씨가 살인을 저지른 걸 이상하게 여겼다.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발견한 경찰은 팽씨를 계속 추궁했고 결국 팽씨는 '누군가의 요구로 살인했다'고 진술하면서 사건은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5억원 빚 때문에…치밀하게 계획하고 친구 시켜 살해
= 재력가 살인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씨 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남부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는 이날 김 의원에 대한 심문을 끝으로 배심원의 평결을 참고해 최종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2014.10.27/뉴스1  = 재력가 살인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씨 27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남부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고 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는 이날 김 의원에 대한 심문을 끝으로 배심원의 평결을 참고해 최종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2014.10.27/뉴스1
살인교사 혐의범이 현직 서울시의원 김씨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살인혐의로 수사를 받은 팽씨는 10년지기 친구인 김씨부터 사주를 받고 살인을 했다.

검찰은 김씨가 '송씨가 소유한 순봉빌딩이 포함된 서울 강서구 발산역 일대 부동산을 일반 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2010년 10월∼2011년 12월 5억2000만원의 금품과 수천만원어치의 술 접대를 받았음을 확인했다. 해당 지역은 애초부터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이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또 김씨는 2012년 송씨가 운영하는 웨딩홀 근처에 새로운 웨딩홀 신축을 막아주는 대가로 4000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용도변경이 지체되자 송씨는 김씨의 금품수수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정치 생명이 끝날 것을 두려워한 김 씨는 친구인 팽씨를 이용해 송씨 살해 계획을 세웠다.

김씨는 "송씨를 죽이고 차용증을 가져오면 그동안 (네가 나에게) 빌렸던 돈 7000만원을 변제해주고, 중국에서 가족들과 편히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또 김씨는 팽씨의 범행을 부추기며 '범행비용'으로 1300만원을 지급했고 범행에 쓰일 손도끼와 전기충격기도 지원했다. 이후 두 사람은 송 씨의 출·퇴근 시간과 동선을 파악하는 등 치밀한 계획 끝에 팽씨가 김씨로부터 받은 흉기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中가서 편히 살아"…영화 '황해'처럼 살인청부 한 공직자 [뉴스속오늘]
김씨는 범행 후 줄곧 "팽씨의 단독범행이고, 나는 송씨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 김씨가 팽씨에게 보낸 쪽지가 발견된 것이 중요한 단서가 됐다. 송씨를 살해한 후 김씨는 팽씨에게 중국으로 도망가라고 했고 만약 그곳에서도 잡히게 되면 자살하라고 지시했다. 이처럼 범죄를 뒤집어 씌우려 한 정황은 추후 재판에서 가중처벌 사유가 됐다.

김씨의 체포 소식은 주위를 당혹하게 했다. 김씨 주변인들은 평소 김씨의 행실을 봤을 때 믿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씨는 시의원이 되기 전 10년여 동안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을 했다. 김씨와 가깝게 지냈던 한 국회 관계자는 "그 친구는 의협심도 있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민주당에 대한 충성도도 매우 강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이번 일이 믿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또다른 관계자도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젊은 나이에 정치생활을 시작해 시의회 안에서도 촉망받는 선량이었다"며 김씨가 끔찍한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에 대해 '의외'라며 당황스러워 했다.

김씨는 국민참여재판을 받은 1심에서 살인청부 혐의가 인정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팽씨는 25년을 선고받았다. 김씨가 사회적 지위나 사건 발각 후 꼬리를 자르려 팽씨에게 연락한 점이 가중처벌됐다는 것이 판결문의 요지다. 재판부는 팽씨도 청부살해라는 점을 감안해 보통살인보다 가중처벌했다고 밝혔다.

이후 둘 다 항소를 제기했지만 2심에서 팽씨는 사건에 협력하고 반성하는 기미가 있다며 5년이 줄어든 20년을 받았고 김형식은 그대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김씨는 이에 불복하고 상고했으나 대법원에서 2015년 8월 19일 상고를 기각해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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