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회사후소(繪事後素) 함영주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대표 2022.04.11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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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후소(繪事後素),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어야 채색을 해 아름답게 됩니다. '논어'에 나옵니다. 그림이 완성된 후에야 흰색의 중요함이 드러납니다. 어떤 그림이 훌륭한 작품이 되려면 화려한 색채만 있어선 안 되고 반드시 여백의 흰색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회사후소에서 핵심은 '소'(素)입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소는 평범하고 담백한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은 화려하기보다 평범하고 소박하고 담백해야 합니다. 한발 더 나가면 영웅은 본래 모습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습니다. 가장 평범한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고, 어리석은 듯 보이는 사람이 사실은 매우 총명한 사람입니다.



쩡궈판이라는 청나라 말기의 유명한 정치가는 사람을 쓸 때는 약간 촌티 나는 사람을 중용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권력을 갖더라도, 큰 업적을 세우더라도 자랑하지 않고 평범한 모습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우여곡절 끝에 취임했습니다. 금융권 안팎에서 그의 회장 취임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신입사원 채용비리 재판은 물론 해외금리 연계 DLF(파생결합펀드)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문책경고까지 장애물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관례대로라면 국민연금과 외국인 주주들은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져야 했습니다. 하나금융 내부에서도 김정태 전 회장이 전폭 지지했지만 함영주 회장의 이런저런 법적 흠결 때문에 그를 후임자로 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함영주 회장은 채용비리와 관련해서는 주총 2주 전에 1심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당국의 문책경고와 관련해서도 주총 전날 서울고법으로부터 금융당국의 중징계 처분효력을 2심 선고 때까지 정지한다는 선고를 받아내 사법 리스크가 해소됐습니다. 내부적으로도 김정태 전 회장이 용퇴를 선언한 상황에서 실력과 경륜,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달리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회장직에 오른 데는 이런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함영주 회장은 회사후소의 전형입니다. 그의 평범함, 소박함, 담백함과 그의 촌스러움이 난관을 뚫고 회장직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함영주 회장은 늘 스스로 '시골 촌놈'이라고 말합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집안이 어려워 상고에 들어갔고 은행에 들어간 후에야 야간대학에 다녔습니다. 입행 후에도 본점 주요 부서나 해외근무는 언감생심, 늘 야전 영업점을 전전했습니다. 금융권에서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귀족문화로 유명합니다.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고졸의 서울은행 출신 함영주 회장은 늘 아웃사이더였습니다. 대한민국 금융사에서 회장이나 은행장에 오른 사람 중 함영주 회장처럼 겉으로 내세울 게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널리 드러나고,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므로 인정받고, 스스로 뽐내지 않으므로 공을 남기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므로 우두머리가 된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함영주 회장이 딱 이렇습니다. 당신이 리더가 되길 바란다면 참고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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