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렬의 Echo]ESG와 '가치소비하는 인간'

머니투데이 송정렬 산업2부장 2021.1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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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나?" 10여년 전 한 유통대기업 경영자가 던진 말이다. 일부 논란이 있었지만 사실 당시만 해도 이 말 자체가 그리 틀린 것은 아니었다. 소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기에 사회적, 정치적 가치가 소비자의 선택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가치소비는 일종의 사치였던 셈이다.

그러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변화무쌍한 소비자의 마음과 행동은 오죽할까. 아마도 지금 저 말에 동의할 기업경영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소비의 중심축인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는 저 질문에 주저 없이 "네! 저는 그래요"라고 응수할 것이다. MZ세대를 규정하는 최대 특징은 바로 지향하는 가치관에 따라 소비를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가치소비' '미닝아웃'(meaning out)이다.



이들은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제품과 서비스라면 아무리 가격이 비싸도 기꺼이 소비한다. 그런 기업들을 '돈쭐'낸다. 반면 아무리 품질이 좋고 싸더라도 불량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는 철저히 거부한다. 페트병 리사이클 원단을 활용해 만든 의류제품에 열광하고 갑질 논란이나 인권문제 등을 일으킨 기업은 불매운동으로 응징한다.

기업 입장에서 가치와 신념을 위해 기꺼이 이익을 포기하는 소비자들은 무섭다. 기업에 최고 제품과 서비스 그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소비자가 소수가 아니라 다수라면 기업의 등줄기엔 땀이 흐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변한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니즈를 어떻게 충족시키느냐가 기업들의 생존 키워드다.



# 올해 재계의 최대 화두는 단연 ESG(환경·사회·지배구조)였다. 말 그대로 ESG 열풍이 불었다.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ESG전담팀을 꾸렸다. 마치 ESG를 외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처럼. 심지어 조금 과장하면 기업들이 내는 보도자료의 절반 이상이 ESG였다.

이렇다 보니 여기저기서 ESG피로증을 호소한다. 일부 기업은 진정성 없이 과대포장으로 친환경 이미지만 구축하는 이른바 '그린워싱'(Greenwashing) 논란을 일으키는 등 ESG 열풍의 역효과도 없진 않았다. 혹시 이러다 ESG 열풍도 한순간 확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경영학계 석학들은 ESG 열풍이 결코 한철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미 블랙록, GE, IBM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사회적 가치창출을 통한 성장을 추구,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 넷제로 등 세계 각국 정부의 환경정책과 규제도 기업들의 ESG 추진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업의 지상과제는 얼마나 돈을 잘 버느냐였다. 하지만 ESG 시대의 기업은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만 잘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다. 이왕이면 환경도 생각하고 사회적 책임도 수행하면서 투명한 지배구조까지 갖춘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 이상기후 등 환경오염으로 신음하는 지구와 양극화 등 갈등에 지친 사회가 기업들의 적극적인 역할과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 선거의 계절이다.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 한 표가 모여 세상을 바꾼다. 최악의 대선이라는 악평이 쏟아진다. 그래도 내년 3월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고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다.

ESG를 성장축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기업이 많아지려면 무엇보다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권자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듯 소비를 할 때마다 철저하게 EGS에 진심인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만 골라 쓰면 어떨까. 그것을 가치소비라 부르든, ESG소비라고 칭하든 말이다. 확실한 건 우리가 '소비하는 인간'을 넘어 '가치소비하는 인간'으로 한 단계 진화할 때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송정렬의 Echo]ESG와 '가치소비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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