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보는 전두환[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1.11.2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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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근육질 깡패처럼 생긴 지옥의 사자들이 '죄인'이 죽기로 한 시간에 정확히 나타난다. 인정사정 두지 않고 피가 철벅철벅 하도록 두들기고 패대기치고 찌른다. 마지막엔 지옥불로 태우고 녹여 해골과 갈빗뼈 형태만 겨우 보이는 잿더미로 만든다.
신은 자신의 뜻을 이렇게 '시연'함으로써 인간의 죄를 다스린다.
오징어게임을 제치고 월드 넘버 1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드라마 '지옥'의 초반부 이야기다.

죄인은 그렇게 단죄하는 게 마땅하다. 그게 정의로운 사회니까.



쿠데타로 집권하고 '정의'를 이름으로 내건 정당을 만들어 대통령까지 지낸 전두환씨가 23일 사망했다.
3김도 갔고 전·노도 갔다. 80년대가 이렇게 저물었다. 술 한 잔을 들어야 마땅한 날이었다. 하지만 1주전 골절 수술을 받은 터라 점심 맥주 한 잔으로 기념했다. 저녁 때 한 잔 했다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도 들렸다.
이날 사람들이 든 잔은 '축배'일까, '쓴잔' 내지 '홧술'일까.

전두환은 90살 천수를 누리고 갔다. 오랜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아내가 보는 가운데 화장실에서 넘어져 깔끔하게 생을 마무리했다. 미납추징금 936억원을 사회에 빚으로 남겼지만, 자식들은 빚 상속 안 받으면 그만이고 그들은 이미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어 보인다. 가족이나 주변사람들 힘들게 하지 않고 갔으니 전형적인 '호상(好喪)'아닌가. 덕담을 건네 받을 사람은 전두환의 가족들이고, 그와 함께 영화를 누린 공범들이다. 학살의 주역이 사망했다고 피해자들, 즉 우리가 축배를 돌리기엔 그의 최후가 너무나도 평온했다.



드라마 '지옥'은 다소 늘어지는 전반부를 버티고 4편 이후로 넘어가면서 제대로 진가를 보여준다.
신의 뜻은 개뿔이나... '갑툭뛰' 지옥의 사자 셋은 그저 인간으로선 맞설수 없는 지진이나 태풍처럼 거대하고 무자비한 자연의 폭력 같은 것이었다. 왜 어떤 사람들에게 죽음이 예고되는지, 지옥사자들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불가하다.
신들의 세계는 아예 제쳐둔 채, '신의 뜻' 앞에서 공포에 떨고, 이를 이용하는 인간 존재에 초점을 맞추는게 이 드라마의 미덕이자 현실감의 출발점이다.
'신의 정의'를 전달하는 메신저라며 사람들의 공포심을 파고 드는 사이비 종교 '새진리회', 낯익지 않은가. 거대한 종교 기업으로서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 언론사까지 소유하는 종교집단, 우리 현실 세계에는 없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혐오와 선동을 일삼고 희생양들의 좌표를 찍어 모멸과 고통을 안기는 자들, 이 순간에도 우리는 보고 있지 않나. 확성기로 악다구니를 써 가며 폭력도 서슴지 않는 드라마 속 '화살촉'부대같은 경광등 집단이 한 둘 인가.

"도대체 말하고 싶은게 뭐야 이 새끼야"
'신의 정의'를 신봉하고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믿었던 미치광이조차 최후를 맞기 직전 하늘에 대고 이렇게 소리지른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인간 세상에 '신의 뜻'이란 건 없다는 '지옥'의 메시지를 떠올리는게 과한 일일까.

신의 뜻이란 게 있었으면, 지옥 사자 셋 보내서 심판하지는 않았더라도 세상에서 사는 것이라도 지옥 같게 만들었어야 했다. 죄책감과 수치심에 고통받았어야 했다. 혹시라도 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시연' 날짜를 90세 되는 2021년 11월13일 오전까지 미뤘을까?
그랬다면 완전한 신의 악수(惡手)였다. 그는 당당했고 떳떳했다. 더구나 말년에 치매에 걸렸다는게 사실이라면 정말로 모든과거를 싹 잊고 천진난만하게 죽었을 터이다.


사이비 종교 새진리회의 창시자 정진수(유아인 분)는 "공포가 아니면 뭐가 인간을 참회하게 할까요" 라고 묻는다.
전두환은 참회도 사과도 없이 떠났다. 신의 뜻은 전혀 그에게 공포를 주지 못한 것 같다.
새진리회에 쫓기는 주인공을 구해주는 초로의 택시운전사 아저씨는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라고 말한다.
인간들의 세상을 인간들이 제대로 알아서 하지 못할 때, '전두환도 OOO는 잘했다는 식의 목소리가 당당해질 때, 다시 80년 광주처럼 여기가 지옥이 될 지 모른다.

'지옥'에서 보는 전두환[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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