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군대족구, 듣는 부모 마음[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1.11.1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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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공이 앞으로 날아 오자 갓 전입 온 신병이 "마이 볼"을 외쳤다.
병장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병장:야 야 얌마, 마이 볼은 반말이고~
신병: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병장:제가 차도 되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라고 해야지 임마
옆에 있던 일병이 ㅋㅋ웃음을 삼킨다.
병장:얌마 내가 우습냐
일병:아, 아닙니다.
그 다음 공이 날아오자 신병 정말로 기관총처럼
"제가차도되는지여쭤봐도되겠습니까"
그게 어디 지속 가능한 워딩인가.
그 다음부터는 슬금슬금 고참에게 양보...
존댓말 때문에 한국 축구가 망가졌다는 히딩크 감독의 개탄은 한국 군대에서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첫 휴가 나온 아들이 들려 준 군대족구 얘기다.
(부대가 산 꼭대기라 축구는 못하고 족구만 한단다). 킬킬대며 이야기하는 모양새가 군 생활 그럭저럭 잘 적응하는 거 같아 보였다.



아들은 군대 보내야 한다.
그래야 아들이 사람 된다...가
아니고 부모가 자식 소중한 줄 알게 된다.

어제 아침, 출근하면서 자고 있는 아들 이마에 입맞춤을 했다.
언제 이후 처음인지 모르겠다.
다 큰 아들놈이지만 아이 적 냄새가 나는 듯 했다.
꿈 같았을 첫 휴가 2주를 다 쓰고 복귀하는 날이었다. 집에서 보내는 휴가 마지막 날 단잠을 깨우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굵어진 어깨와 허벅지며 엉덩이까지 쓰다듬었다. 그 통에 눈을 뜬 아들녀석 "넉 달 뒤에 봅시다"라고 덜 깬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는 금강산과 동해바다가 한번에 보이는 산꼭대기 GOP에서 보초 서다가 입대 5개월만에 첫 휴가를 나왔다.
첫 휴가 땐 누구나 그렇듯 녀석이 써 놓은 '휴가 버킷 리스트'에는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한 페이지를 넘어갔다. 친구들 만나고 술 마시고, 가평으로 여행도 가고 첫 며칠은 그랬다.

하지만 세상은 제가 군대 가 있는 동안에도 잘 굴러가고, 친구들은 자기 휴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게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은 듯 했다.
휴가 나와서 군대 가 있는 친구 부대 면회가고, 휴가 나와 있는 고참들 만나러 부산까지 달려 가고, 제대한 고참 만나 밥먹고, 부대 안에 있는 동료 선임들하고 전화나 카톡으로 농담 따먹기 하고...
휴가땐 군대쪽으론 오줌도 누지 않아야 하는데. 현실은 지금 자기가 속한 집단, 공통의 대화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제일 살가운 거다.

제 녀석 생각해주고 기다려 주고 군대 이야기 귀 기울여 들어주고 맞장구 쳐 주기로는 가족이 제일이다.
매일 계단 1200개, 63빌딩 높이 초소를 오르내려야 하는 경계병의 하루. 차범근처럼 탄탄해 진 허벅지와 목도리 도마뱀 같은 광배근이 터프하다. 계단 오를 땐 숨이 턱에 차고 허벅지가 터질 것 같지만, 금강산 자락 천하 절경과 동해 일출을 거의 매일 접하는 걸 특권으로 알고 위안을 삼는단다.


"휴가 나와서 나처럼 집에서 시간 많이 보낸 병사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는 아들 말마따나 제법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배달 짜장면으로 때운 마지막 저녁을 포함, '아느님'이 가족 점심 저녁을 세 번이나 같이 해 주셨다. 휴가 오자마자 아빠와 함께 한강변 10km를 달리고 산책하고, 코스트코에서 같이 장도 봐 주고 했으니 황송하다.

휴가 2주는 아들녀석 뿐 아니라 부모한테도 쏜살같이 지나갔다.
면회 외박도 없이 주7일 근무하는 그 곳 생활로 돌아가는 오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꼬.
날은 또 왜 이렇게 갑자기 추워지는지.
한겨울이면 체감온도가 영하 20~30도까지 떨어진다는데.
그 곳을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지켜야 할 병사들에게 핫팩, 목도리, 장갑 이런 게 도움이나 될까 싶다.
이 넘의 통일은 언제나 된단 말이냐. 손자 손녀 세대에는 두만강 푸른 물 바라보며 널럴한 국경 초소 근무나 해야 할 것 아닌가.

잘 버텨라.
아들 군대족구, 듣는 부모 마음[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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