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일본 기업들, '주4일 근무' 먼저 해보니…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이창명 기자 2021.10.2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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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서울의 한 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고 있다.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주4일 근무제 도입'을 검토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이 선도적으로 주4일제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나서면서 근무 환경에 변화가 시작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재계는 '시기상조'라며 당혹스런 입장이다.

하지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탄력적 근무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주4일제 실험이 본격화하고 있다.



"100년 된 주5일제" 스페인, 전국 단위 실험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나라는 스페인이다.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올해 초 주4일제를 전국적으로 실험하는 데 합의했다. 이르면 가을부터 시작된다. 스페인의 주4일제는 진보 정당 마스파이스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희망업체 200곳이 3년 동안 주4일제를 시험하고 손해 부분에 대해선 정부가 보상하는 내용이다. 사업 첫 해에는 정부가 전액을 보상하고 두 번째 해에는 50%, 세 번째 해에는 33%를 보상한다. 이를 위해 스페인 정부는 5000만유로(약 665억원)를 예산으로 배정했다.

주4일제 개념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20세기 초부터 많은 진보 정당들의 목표였다. 이니고 에레혼 대표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한 지 100년이 지났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의 생산성은 꾸준히 높아졌다. 그렇지만 그 혜택은 근로자들의 자유시간 확대로는 이어지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장시간 근로를 미덕으로 여기던 일본도 변화의 바람에 동참할 참이다. 희망 직장인에 한해 선택적 주4일제 도입을 검토하면서다. 올해 1월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제안했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일과 삶의 균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자발적인 주 3일 휴일로 직원들은 보육, 간병 등에서 어려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퇴사는 줄어들 것이고 휴일이 늘어남에 따라 일본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먼저 실험한 기업들, 결과는?
일찌감치 주4일제 실험에 나선 기업들도 적지 않다. 글로벌 소비재공룡 유니레버는 지난해 12월 뉴질랜드지사 전직원 81명을 대상으로 1년 동안 급여 삭감 없는 주4일제 실험에 돌입했다. 결과에 따라 세계 15만5000명 직원들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기업중에는 미즈호 금융그룹과 일본 야후 등이 주4일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리쿠르트그룹은 이달부터 직원 1만6000명에 선택적 주4일제를 적용한다.

스페인 남부에 소재한 소프트웨어 회사인 델솔은 지난해 주4일제를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결근율은 28%나 줄었고 매출 성장률도 그대로 유지됐다. 주4일제 도입 후 퇴사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독일 정보기술(IT) 회사 아윈도 지난해 봄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4일제 실험에서 실적, 직원 만족도, 고객 만족도가 모두 상승한 것을 확인해 지난 1월부터는 대상을 전직원으로 확대했다. 아담 로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행복하고 소속감이 높고 균형잡힌 근로자들이 더 많은 효율을 낸다고 굳게 믿는다"면서 "직원들은 더 스마트하게 일할 방법을 찾고 생산성은 낮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부동산회사 퍼페추얼가디언의 앤드루 반스 CEO는 일찌감치 주4일제를 실험한 뒤 아예 주4일제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2018년 240명 직원에 8주 동안 주4일제를 실험한 뒤 생산성은 향상되고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줄어든 것을 확인, 주4일제를 영구 정착시켰다. 반스 CEO는 이후 비영리단체를 구성해 주4일제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워라밸이 밀고 코로나가 끈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주5일제가 워낙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나머지 이것이 바뀔 수 있다는 게 생소할지 모르지만 이제 때를 만난 것인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경제 주도층이 밀레니얼·제트 세대로 이동함에 따라 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아진 상황에서 지난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 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근무·탄력근무 등이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은 주4일제 도입으로 옮겨갔다. 고용사이트인 집리쿠르터에는 주4일제를 언급한 게시물의 비율이 1만개 당 62개로 3년 동안 3배 늘었다.

주4일제를 도입하는 기업들로선 직원들의 만족도 상승으로 인재 이탈을 막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일자리 증가, 휴일 증가에 따른 관광업 활성화 등도 장점으로 꼽힌다.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의 윌 스트롱 연구원은 파이낸셜리뷰에 "주4일제가 추진력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근무시간 단축은 전적으로 현실적인 목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보편화는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제조나 고객 서비스 등 불가피하게 주5일제 근무를 이어가야 하는 직군에서는 불공정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축된 시간을 메우기 위해 기업이 추가 고용에 나선다면 기업의 비용이 늘어나고 기업의 이익을 갉아먹어 되레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스페인에서도 주4일제를 반대하는 정치 및 재계 지도자들은 스페인의 낮은 생산성을 지적하면서 경제 위축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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