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반발 거센데도…탈레반-서방 '중재자' 자처한 터키, 속내는?

머니투데이 임소연 기자 2021.09.0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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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아프간인들이 모여있다. 전날 탈레반은 카불을 점령했고 이날 새벽부터 공항에서는 필사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사진=AFP지난달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아프간인들이 모여있다. 전날 탈레반은 카불을 점령했고 이날 새벽부터 공항에서는 필사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사진=AFP


터키가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과 미국·유럽 국가 사이를 중재하겠다고 적극 나서고 있다. 탈레반 편을 들어 국내 반발 여론에 부딪혔던 터키 정부가 갑자기 '중재 역할'에 나선데는 외교적 계산이 깔려 있다.

2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터키 정부는 "아프간 카불 공항(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운영을 위한 탈레반의 협력 제안을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은 "가장 중요한 건 공항 안팎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공항의 안전은 국제사회에 신뢰를 주는 방식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탈레반은 카불 공항 운영을 위해 카타르·터키 등에 지원을 요청했다. 터키는 이미 지난 5월 미군 철수가 시작되자마자 미국에 카불 공항 운영 및 경비 임무를 맡겠다고 제안한 바 있다.

카불 공항은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간 탈출 행렬이 이어지면서 정상 가동이 안되고 있는데, 긴급 물품들이 아프간에 도착하려면 공항이 정상화돼야 한다. 여기에서 터키가 주요 역할을 맡겠다고 나선 것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터키가 카불 공항 운영을 맡으면서 미국·서방 국가와 탈레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 그 이상을 하고자 하려 한다고 봤다.

크리스티안 브라켈 터키 하인리히뵐재단 외교정책 분석가는 도이치벨레(DW)에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기 전부터 터키는 아프간에서의 새 역할을 찾고 있었다"며 "올 초 이스탄불에서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간 평화 협상 자리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터키가 외교적 입지를 끌어올리려고 아프간을 이용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서방 국가들은 터키가 이슬람 교도가 다수인 국가로서 탈레반과의 대화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터키가 이번 분쟁을 다루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터키, 역할 무리하게 자처하는 이유는 'EU 가입'
시그리드 카그 네덜란드 외무장관(왼쪽),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오른쪽)/사진=AFP 시그리드 카그 네덜란드 외무장관(왼쪽),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오른쪽)/사진=AFP
그러나 정작 터키 정부의 '친(親) 탈레반' 입장은 국내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

탈레반이 터키와의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서 "믿음의 형제"라고 표현하자 에르도안 대통령이 "탈레반과 터키의 믿음 사이엔 모순이 없다"고 화답했다.

이에 많은 터키인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분노를 표하며 '#탈레반은 내 형제가 아니다'는 해시태그를 확산시켰다. 이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당신은 탈레반이다'는 해시태그를 달아 트윗을 날려 더 큰 논란이 불거졌다.

사실 터키는 탈레반과 '이슬람 교도'가 다수라는 점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그럼에도 무리한 역할을 자처하는 데는 터키의 숙원인 '유럽연합(EU)' 가입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터키는 'EU 가입'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왔다. 터키는 2015∼2016년 유럽 난민 위기 당시 시리아 난민 400만명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EU 가입을 추진했지만, 유럽의회가 터키 정부의 인권 탄압과 법치 훼손을 이유로 2019년 3월 '논의 중단'을 결의했다.

터키의 셈법은 최근 외무장관의 말에서도 드러난다.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부 장관은 2일 앙카라를 방문한 시그리드 카그 네덜란드 외무장관을 접견한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EU의 접근 방식이 돈을 줄 테니 터키는 난민들을 가둬두라는 식이라면 협조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급증하는 아프간 난민은 터키와 EU의 공동 문제"라며 "단순한 공식이 아닌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터키의 선택과 EU의 운명은 밀접하게 연결돼있단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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