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재료값·금리까지…"만들어도 남는 게 없다"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1.08.3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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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재료값·금리까지…"만들어도 남는 게 없다"


"만들어도 남는 게 없어요."

경기도 광명시 부품업체 A사는 올 들어 주문이 늘면서 공장을 쉴새없이 돌리고 있지만 살림은 더 빠듯해졌다. 핵심자재인 알루미늄 가격이 지난해보다 35% 급등한 탓이다. 납품 계약상 원가 상승분을 제품가격에 반영할 수 없어 일만 늘었지 이익은 더 줄어든 상황이다.

충남 대산산업단지 화학업체 B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건설경기가 회복되면서 매출이 늘었지만 물류비 상승에 원자재가격 상승이 겹치면서 허리띠를 더 졸라매게 됐다. B사 김모 대표는 "순이익이 오히려 10~20%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4차 대유행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원자재가격 상승과 금리인상이 겹치면서 기업들의 경영난이 커지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적은 중견·중소기업의 상황이 심각하다. 가뜩이나 대기업 쏠림현상이 심각한 산업구조에서 자칫 뿌리산업을 담당하고 있는 중견·중소기업이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0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대기업 104곳, 중소기업 206곳 등 국내 기업 31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은 최근 원자재가격 상승(81.6%·복수응답 허용), 코로나19 재확산(80.6%), 금리인상(67.7%)을 가장 큰 부담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재가격 상승에 대해서는 기업 3곳 중 1곳(36.1%)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코로나에 재료값·금리까지…"만들어도 남는 게 없다"
연초부터 이어진 원자재가격 상승세는 원유·금속·식품류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올 1월 54.82달러에서 7월 72.93달러까지 올랐다. 후판(61.2%), 냉연강판(56.0%), 선철(54.8%) 등 철강 원자재가격 상승도 두드러진다.



곡물과 팜유가격 상승세에 시달린 라면업계에서는 이달 들어 시장 반발에도 불구하고 제품가격을 6~10% 올렸지만 수익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인천에서 주물을 제조하는 C사의 한모 대표는 "환율까지 오르면서 올 상반기에만 수입원가 때문에 1억원 가까이 손실을 봤다"며 "중소기업으로선 하루하루 죽느냐 사느냐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기업도 업종에 따라 원자재가격 상승의 영향을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 (31,550원 ▼1,000 -3.07%)은 올 2분기 수주 감소와 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영업손실 1조74억원을 기록, 적자전환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26일 기준금리를 연 0.5%에서 연 0.75%로 인상하면서 커진 금융비용 부담도 기업들의 숨통을 죄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의 비중이 2019년 35.1%에서 2020년 39.7%로 늘었다. 중소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전체의 절반 수준인 50.9%(대기업 28.8%)가 영업이익보다 이자비용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에 재료값·금리까지…"만들어도 남는 게 없다"
올 하반기 기준금리가 추가 인상되고 내년부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이자 상환 유예가 끝나면 기업들의 신용 리스크와 구조조정이 빠르게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 7월 기업대출은 11조3000억원으로 6월(5조1000억원)보다 2배 이상 늘면서 역대 7월 기준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것을 두고 기업들이 금리 추가인상에 대비해 '자금 확보'에 나섰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올 상반기 일부 경제지표가 호전됐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코로나19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 조사에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기업이 77.5%였다. '코로나19가 진정된 뒤에도 영업상황이 호전되기 힘들 것'이라고 답한 기업도 19.7%에 달했다.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정부의 고심도 큰 상황이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지금의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음달까지 간다면 거시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경영난을 겪는 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위한 대책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원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금리까지 올리면 힘든 기업들은 더 힘들어진다"며 "선별 지원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산업을 전환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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