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찾아 떠도는 '카불의 과학자들'

머니투데이 한고은 기자 2021.08.2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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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여성교육 상징 '아프간 드리머스' 美 학자 도움으로 카타르로 피신

(카불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19일 (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카불 공항에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미국 군용기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C) AFP=뉴스1  (카불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19일 (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카불 공항에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미국 군용기의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 (C) AFP=뉴스1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장악으로 아프간인들의 탈출행렬이 이어지는 가운데 카불의 과학자들 역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지는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하고 있는 과학자, 연구자들의 소식을 전했다.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탈레반은 '반과학', '반교육'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한 채 미국 등 서방국과 협력한 과학자들에 대한 테러를 일삼아왔다. 대학 등 교육시설도 탈레반의 공격 목표물 중 하나였다.



가명으로 소개된 키베르 마샬이라는 아프간인 과학자는 2009년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미국 국제개발청과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던 그의 사무실을 대상으로 한 탈레반의 폭탄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마샬은 당시 휴가로 자리를 비웠지만, 동료 5명이 사망했다. 아프가니스탄 교육부에서 근무하던 2019년에도 자살폭탄테러 조끼를 입은 테러범에게 위협을 받았다.

마샬은 사이언스지에 "탈레반은 반과학적"이라며 "우리가 국가를 변화시켜왔기 때문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표적이 되곤 한다"고 설명했다.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12월부터 독일에 머물고 있는 마샬은 동료 연구자들과 아프간인 과학자들의 탈출을 돕고 있다.



탈레반이 정권에서 축출된 후 소수에 불과하던 아프가니스탄의 고등교육기관은 100개 이상으로 급증했고, 여성도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의 샤리아법(이슬람 율법) 체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불에 위치한 아비세나 대학의 한 여성 엔지니어는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여성들이 이룩한 성과가 퇴색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임시 피난처에서 지내고 있는 이 엔지니어는 "탈레반이 우리 가족을 찾아 집집마다 찾아다녔다"며 "카불에 있는 아파트를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학자들의 상황은 점차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카불 폴리텍대에서 근무하는 한 연구자는 "현금이 부족한 탈레반 정권이 대학 교수나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탈레반은 최근 아프가니스탄 동부 가르데즈에 위치한 팍티아대에 총장을 교체했다.


국제 과학자단체, 美정부에 아프간 학자 구출 요청…개인·대학에서도 탈출 지원
다행히 아프간 과학자들을 위한 국제협력이 진행중이다. 학문의 자유와 연구자들의 안전을 위해 연대하는 국제단체인 SAR(Scholars at Risk Network)은 지난 18일 미국 국무장관에게 2500명 이상의 서명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서한에는 아프간인들을 위한 비자 요건 완화와 학자, 학생, 시민사회 운동가들을 위한 구출 프로그램을 지속해야 한다는 요청을 담았다.

지난 19일에는 아프간의 여성교육을 상징하는 아프간 로봇공학팀 '아프간 드리머스' 소속 학생 10명이 미국 학자의 도움으로 카타르로 탈출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아프가니스탄 과학자들과 협력했던 서방국가 기관들은 이들과의 협력 기록을 삭제하고, 안전한 구출 방법을 찾기 위해 바이든 정부와 협력 중이다. 2017년부터 카불에서 현지 연구자, 학생들과 농작물 연구를 진행했던 미시간주립대 등도 구출 프로그램을 계획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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