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클릭]모처럼 활기 띤 과기계 창업, 이게 마뜩잖은 그들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21.07.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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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창업을 나타낸 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학기술 창업을 나타낸 이미지/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획재정부에서 창업 진흥 사업을 추가해 오라고 합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한 고위공무원의 얘기다. 7~8월엔 내년도 정부 예산편성 방향이 대략 나온다. 각 부처는 이에 맞춰 다음해 사업계획서를 준비한다. 내년 정부 사업은 '창업'에 방점을 찍을 것이란 촉이 선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4일 고용·사회안전망에 중점을 둔 '휴먼뉴딜'을 한국형 뉴딜정책에 추가하며, '양질의 창업지원'을 강조했다.

과거 연구실 창업이 활성화됐던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사이 많은 과학자들이 창업을 꿈꿨다. 하지만 닷컴 붐 붕괴와 함께 모험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연구실 창업도 현격히 줄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가 세계적 수준의 창업생태계를 보유하면서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US뉴스엔월드리포트의 '2021년 창업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5위를 차지했다. 창업 강국 이스라엘(25위)보다 높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기술과 시장을 직접 연결하는 연구실 창업은 시간·비용 단축을 통해 큰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 국내 일반 창업의 5년 생존율은 30%지만 기술 창업은 그 두 배인 60%가 넘는다. 평균 매출액 역시 일반 창업의 8배, 일자리 창출도 7배 이상이다. 코로나가 휘저어 놓은 최악의 경제 상황을 벗어날 해법같은 모델임이 분명하다.

최근 연구 현장에선 창업이 모처럼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음향·진동 분야 과학자 A씨는 오는 9월 창업을 앞뒀다. 조난자 목소리를 알아내는 실시간 추적 기술을 AI로 개발, 드론(무인기)에 탑재할 계획이다. 현장 근로자를 위한 웨어러블(착용형) 로봇으로 창업한 과학자 B씨는 이르면 연말 200억원에 가까운 엑시트(투자회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연구소기업 상장 성공 소식도 간간히 전해진다.



일부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선 기술 창업 토대를 다지는 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띤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하 건설연)은 지난달 29일 스마트건설지원센터 제2센터 착공에 들어갔다. 이곳에선 융복합 건설기술 이전과 함께 예비창업자 발굴·육성 등을 위한 창업공간과 교육·컨설팅 등을 지원한다. 제1 센터엔 건설·프롭테크(Proptech·부동산기술) 스타트업 30여 곳이 입주해 건설연 과학자들과 교류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이곳에선 186명의 고용창출과 12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간 25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성과도 거뒀다. 김병석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은 "패밀리기업 600곳을 스타트업과 엮어 건설계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기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지난 2015년, 항공우주기술 분야 예비창업자를 발굴하는 '스타 익스플로레이션'(STAR Exploration) 사업을 통해 현재 18개 우주 분야 스타트업을 키워냈다. 대표적으로 소형 로켓을 이용한 초소형 위성 발사 사업으로 주목받는 페리지항공우주는 삼성벤처투자(2018년),엘비인베스트먼트(2019년), 산업은행(2020년)으로부터 190억원대 투자를 받았다. 지난 14일 접수를 마친 '스타 익스플로레이션 6기' 모집에도 신청자가 몰렸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지난 7일 홍릉 강소특구 창업학교(GRaND-K) 1기를 대상으로 한 공통 창업 교육과정을 완료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형 창업경진대회를 9월부터 개최한다. 출연연에서 외부 예비창업자에 이르는 창업교육과정을 개설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석진 KIST 원장은 "창업사관학교로 바이오 등 기술 창업을 부스트업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활동을 삐뚤게 보는 무리도 있다. '신경 쓰이게 왜 너희만 오버하냐'는 거다. 여전히 '기관평가 점수에 크게 반영도 안 되는데 왜 하나', '논문·특허만 잘쓰고 내면 되지'하는 식의 관행과 안일한 인식에 갇혀 있다. 그래서 그들이 볼땐 '이탈'일 것이고, 이들의 문법으로 간주하면 '이단아'다. 그런 사이 "쓰이지 않는 특허 유지비로 한해 수억원이 들어간다"는 출연연의 한 기술이전센터장의 푸념은 고질적으로 되풀이 되고, 석박사 학위를 받은 과학기술계 미래 주역들은 졸업 후 정작 갈곳이 없어 실업자로 내몰린다. 이건 분명 적폐다. 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사실 과학기술계에서 창업 활성화를 위한 논의를 진지하게 해본 적이 있었나. 그러고 보니 이달초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의 취임 후 경영 방향을 밝히는 첫 간담회에서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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