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도 대통령도 '흔들'…돈이 브라질을 떠난다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2021.03.11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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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금융시장 혼란이 심화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날이 확산하는 데다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 같은 정치적 변수가 터지면서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브라질 전 대통령/사진=AFP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브라질 전 대통령/사진=AFP


브라질 헤알화는 올해 들어서만 달러 대비 11% 추락했다. 헤알 가치와 반대로 움직이는 헤알·달러 환율은 9일(현지시간) 5.8394헤알까지 오르며 지난해 5월 기록한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이대로라면 환율이 달러당 6헤알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브라질 증시의 보베스파지수는 올해 6.5% 미끄러졌다. 달러로 환산하면 낙폭이 15%에 달해 세계 주요 주가지수 가운데 최악의 성적을 내고 있다. 또 브라질 부채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측정하는 지표가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그만큼 브라질 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했다는 의미다.

브라질 증시 보베스파지수 3개월 추이/사진=인베스팅닷컴브라질 증시 보베스파지수 3개월 추이/사진=인베스팅닷컴
투심이 악화한 배경에는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자리한다. 백신 공급과 함께 세계적으로 바이러스 확산이 둔화되는 데 반해 브라질은 감염력이 높은 변이 바이러스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하루 확진자는 7~8만명으로 역대 최다 수준이며 사망자도 하루 1500명에 육박한다. 입원 환자 급증에 따른 병상 부족 사태는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데에는 정치 혼란도 한몫 한다. 극우 성향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미흡한 코로나19 대응으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졌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가볍게 여기거나 백신 접종에도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브라질은 1월 17일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했는데 전체 인구 가운데 4%만 접종을 마친 상태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뒤늦게 접종에 속도를 내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지지율 반등을 노리지만 내년 10월 대선을 앞두고 브라질 좌파 대부 룰라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가 가까워지면서 정치 혼란은 가속하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3년 전 부패 혐의로 징역 12년형을 받았지만 8일 대법원은 룰라 전 대통령에게 선고된 실형을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2003년부터 집권 8년 동안 원자재 가격 상승과 해외 투자에서 얻은 부를 저소득층에 분배하는 정책을 펼쳐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실제로 6일 발표된 이펙 여론조사에서 내년 대선에서 룰라 전 대통령에 투표할 것이라도 말한 응답자는 50%에 달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뽑겠다는 응답은 38%였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와 투자자들은 룰라 전 대통령이 브라질의 경제위기를 불러온 포퓰리즘 정책을 다시 꺼낼 것을 우려한다. 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는 브라질 재정이 더 악화할 수 있어서다. 씨티그룹은 9일 투자노트에서 "룰라 전 대통령의 복귀 전망은 브라질 투자에 낙관하던 이들에 찬물을 뿌린다"고 지적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 역시 룰라 전 대통령을 견제해 포퓰리즘 정책으로 호소할 공산이 크다. 재정 개선 정책이나 시장 친화적 개혁 의제는 자연히 뒤로 밀려난다.

알렉산드레 슈왈츠먼 전 중앙은행 이사는 로이터에 "나라가 양극화할수록 재정적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결정할 가능성이 커진다"면서 "이미 지금도 재정이 위태로운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 자산 가격에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브라질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90%에 육박해 사상 최고를 찍은 가운데 뼈를 깎는 재정 긴축이 없으면 자본 유출이 심화할 수 있다고 본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추가적인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오는 17일 2015년 이후 첫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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