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이 드러낸 혁신의 그늘…회장님은 왜 고개를 숙였나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21.02.09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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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성과급의 민낯-동기 부여와 불공정 사이 10-①

편집자주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업간 실적 양극화가 확대되면서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은 더 증폭되는 양상이다. 대중소기업간 협업 시스템과 사내 소통, 공정 이슈도 성과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현주소다. 시장 경제의 한 축을 구성하는 성과보상주의의 신화와 현실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성과급이 드러낸 혁신의 그늘…회장님은 왜 고개를 숙였나


"4대 그룹 회장이 정규임금도 아니고 '보너스'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로 시대가 바뀌었다는 거죠.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산업구조나 소통방식의 맨얼굴이 드러났다고 봅니다."

SK하이닉스 (177,800원 ▲7,200 +4.22%)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란에 대한 대기업 한 임원의 촌평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동안 연봉제와 성과보상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가도를 달려온 한국사회의 이면이 코로나19 사태와 80·90년생 직원들의 등장, 산업구조 재편과 맞물려 성과급 논란으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SK하이닉스의 성과급 논란은 최태원 회장이 급여를 반납하고 이석희 CEO(최고경영자)가 사과한 데 이어 노사협의회에서 성과급 산정기준을 변경하기로 합의한 뒤에야 수습됐다. 점잖은 말로 수습이지 사측이 백기투항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SK그룹이 성과 측정의 기준으로 삼아온 EVA(경제적 부가가치·영업이익에서 법인세, 향후 투자금액 등을 뺀 이익)는 최 회장이 직접 주도해 도입한 개념이다.

이번 사태를 두고 '성과급의 역습'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동안 성과급이 자동차나 조선 같은 일부 산업을 제외하면 대개 소통이나 협의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측이 계산해 책정하면 그저 감사하게 수령하던 가욋 급여에 대한 문제제기가 SK하이닉스에서 SK텔레콤 (51,300원 ▲300 +0.59%), LG에너지솔루션, 삼성전자 (76,700원 ▲400 +0.52%) 등 다른 기업으로 번지자 재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다.



국내에 본격 도입된 지 사반세기를 맞는 성과급은 이제 단순히 회사가 주는 당근을 넘어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상징이 됐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성과보상주의 신화와 경제·산업시스템, 대기업과 협력사의 권력관계, 계열사간 역학구도, 사내 이익분배 시스템 등이 성과급을 통해 드러난 민낯이다.

성과급이 드러낸 혁신의 그늘…회장님은 왜 고개를 숙였나
올해 사태의 전조로 꼽히는 삼성디스플레이의 1년 전 논란에서도 이런 속살이 확인된다. 사측이 실적 부진을 이유로 2012년 삼성전자 LCD(액정표시장치)사업부에서 분사한 이후 처음으로 성과급 지급 불가 방침을 통보하자 직원들의 불만은 노조 설립으로 표출됐다.


지난해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의 삼성디스플레이 게시판에는 성과급에 대한 불만의 글이 올라왔다. 성과급 산정 기준의 불투명성과 함께 삼성전자와의 납품구조에서 비롯된 불만이 기폭제가 됐음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가속도가 붙은 반도체 등 국내 산업의 쏠림 현상도 올해 성과급 사태를 통해 재확인한 장면이다. 산업별, 업종별로 엇갈리는 성과급 규모를 두고 이제 막 표출되기 시작한 불만과 갈등이 혁신과 잠재 성장역량을 좀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과급 사태의 밑바닥에 깔린 공정과 소통에 대한 갈증과 별도로 젊은 직원들 역시 성과보상체계의 순기능과 경제산업 전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과주의 모델을 가장 먼저 벤치마킹해 효과를 봤던 삼성은 2010년 전후로 과도한 경쟁 위주의 성과주의와 보상이 문제가 되자 '창조적 성과주의'라는 이름으로 개인 격차를 완화하는 방식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2021년 연초를 뒤흔든 뜻밖의 논란은 10여년 만에 다시 우리 사회의 성과보상 시스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도 성장기와 제조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큰 힘을 발휘한 성과 기반의 물질적 보상이 경쟁만큼 협력과 공정이 중요해진 창의와 혁신, 융복합의 시대를 맞아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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