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법공장' 국회의 민낯…본인이 발의하고 '반·기'든 의원들

머니투데이 정현수 기자, 박종진 기자, 서진욱 기자, 이원광 기자, 권혜민 기자, 김상준 기자, 유효송 기자 2021.01.0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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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입법공장' 국회의 민낯]<1>-① 21대 통과법안 공동발의자 중 19명 '반대·기권'…"몰랐다" "실수다" 해명…"막중함 망각" 목소리

[단독]'입법공장' 국회의 민낯…본인이 발의하고 '반·기'든 의원들


21대 국회가 최악의 '입법공장'으로 전락했다. 하루 평균 수십건의 법안이 올라온다.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과잉입법이다. 과부하가 걸린 국회의 입법 시스템은 법안을 제대로 심사하기 힘들 정도다. 입법공장으로 전락한 국회의 부작용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정작 필요한 법안은 정쟁으로 제 때 통과되지 못하는 반면 불필요한 중복법안으로 과잉 규제 등 졸속 입법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4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21대 국회에서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을 전수조사한 결과 공동 발의자 중 반대나 기권 표결을 한 의원은 총 19명이다. 이들은 법안 발의자에 이름을 올려놓고도 정작 본회의 표결에선 찬성 투표를 하지 않았다.



"내가 낸 법안에 반대한다?"
공동 발의자로서 반대 표결을 한 의원은 3명이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이 공동 발의한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개정안에 반대 표결을 했다. 이 법안은 상임위원회에서 수정 없이 원안 가결됐다. 박 의원 측은 "공동발의를 했는데 반대를 누를 이유가 없다"며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도 공동 발의한 혈액관리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혈액관리법 개정안은 전체 반대표가 1표였다. 유일한 반대표가 공동 발의자인 신 의원이었다. 신 의원 측은 "단순 실수"라며 "법안들이 워낙 많이 연이어 통과돼 반대를 누른지도 몰랐다"고 밝혔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원자력진흥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한 의원은 의지를 가지고 반대표를 던졌다고 했다. 강원도 춘천·철원·화천·양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한 의원은 "강원도가 원자력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반대 표결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법안은 원자력진흥위원회의 심의·의결사항에 '원자로 수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추가한다는 내용이다. 한 의원은 반대 표결을 했음에도 공동 발의를 한 이유에 대해선 "전체 국가적으로 찬성하지만 강원도 의원 입장에선 반대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21대 국회에서 공동 발의자 중 본회의에서 기권표를 행사한 의원은 16명이다. 상당수 의원들은 "단순실수"라고 해명했다. "투표 과정에서 잘못 눌렀다"(이상직 무소속 의원), "회의 속도가 너무 빨라 찬성을 누른다는 게 반영되지 않았다"(박완수 국민의힘 의원) 등의 설명은 유사했다.


[단독]'입법공장' 국회의 민낯…본인이 발의하고 '반·기'든 의원들
찬성·반대 버튼도 제대로 누르지 못하는 국회의원
본회의장 표결 시스템은 재석 버튼을 누른 후 찬성과 반대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재석 버튼을 누르고 찬성과 반대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기권 처리된다. 간혹 의원들이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어 오작동에 대한 정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표결 결과는 본인의 단말기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국회 의사과 관계자는 "표결기 오작동과 표결기 조작 지체, 표결기 조작 착오 3가지 경우에 한정해 통상 본회의 산회 전까지 각 의원들이 '표결결과 정정신청'을 하면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에 한해 표결결과 정정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절차를 숙지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의원도 있었다. "정정이 되는 줄 몰랐다"(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결과가 뒤집히거나 하지 않아 정정하지 않았다"(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정해달라고 했지만 직원이 오지 않았다"(유동수 민주당 의원) 등이 해당한다.

이 밖에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김은혜 국민의힘 의원), "급한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하영제 국민의힘 의원) 등 기권으로 처리된 사유도 제각각이었다. "다른 법안을 기권한다는 걸 착각했다"(박영순 민주당 의원)는 사례도 있었다.



실수라는 해명 외에 '합리적인' 해명을 내놓은 의원실은 한 곳 뿐이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본인이 공동발의한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개정안에 기권했다. 개정안은 사학연금의 공매도 금지를 규정한다. 당초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등 다른 직역연금과 시리즈로 발의된 법안이었다.

허 의원 측은 "본회의에 다른 (시리즈)법은 안 올라오고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 개정안 하나만 올라왔다"며 "다른 법안은 그대로 두고 사립학교교직원 연금법에서만 제한을 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어 기권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독]'입법공장' 국회의 민낯…본인이 발의하고 '반·기'든 의원들


과잉입법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현실'
전수조사는 공동 발의자를 대상으로만 진행했다. 따라서 공동 발의자를 제외한 의원들의 '표결 실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는 법안을 표결할 때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치권에선 입법 시스템의 과부하가 만들어 낸 부작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21대 국회가 시작된 지난해 5월30일부터 12월31일까지 발의된 법안은 총 6957건으로 20대 국회 같은 기간(4698건)과 비교해 48% 증가했다. 20대 국회는 가장 많은 법안이 발의된 국회였다.

법안 발의건수가 의정활동의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면서 의원입법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를 위해 의원들끼리 공동 발의자 이름을 빌려주는 '품앗이 입법'도 일상이 됐다. 단순히 글자 하나만 바꾼 개정안도 수두룩하다. 의원들이 본회의에 올라오는 법안을 일일이 숙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입법권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의무이지만 의원들이 발의 경쟁을 하다보니 입법권의 막중함을 간과하고 있다"며 "자기가 발의한 법안까지 반대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건 입법권의 막중함을 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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