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여자’ 질 바이든, 첫‘풀코스 완주’ 영부인…우리 딸들은?[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0.11.1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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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질 바이든 여사가 보스턴마라톤 희생자를 추모하며 헌화한 운동화/사진=백악관 유튜브 캡쳐질 바이든 여사가 보스턴마라톤 희생자를 추모하며 헌화한 운동화/사진=백악관 유튜브 캡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아내 질 바이든(69) 교수는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백악관에서 출퇴근하는 첫 ‘투 잡’ 더블잡 퍼스트레이디가 될 예정이다.

또 하나 있다.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한 첫 퍼스트 레이디로도 기록될 것이다.



2013년 4월25일. 당시 ‘세컨드 레이디’ 질 바이든은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마라톤 피니시라인의 추모공간에 러닝화 한 켤레를 걸고 어루만졌다. 꽃 한 다발과 함께 자신이 신고 뛰던 러닝화를 헌화(獻靴)함으로서 그는 런너로서 느끼는 각별한 슬픔과 공감대를 나타냈다. 흙먼지가 묻어 있는 운동화에 그는 ‘BOSTON STRONG!’ 이라고 적었다. 현지 언론들은 이를 보도하면서 ‘부통령의 아내, 런너(The vice president's wife, who is a runner)’라고 표현했다.

40세 즈음 처음 달리기 시작한 바이든은 47세이던 1998년 해병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풀코스를 4시간30분 2초에 완주했다. 2초를 줄이려 이를 악물었지만 결국 ‘서브 4.5’에 실패한 걸 안타까워했을 장면이 눈에 선하다(오프라 윈프리가 1994년 이 대회에 참가해 4시간29분15초를 기록했다. 이후 4시간30분은 한동안 마라톤 도전자들에게 ‘오프라 라인’으로 불렸다. 별거 아니라고? 시속 9km이상 속도로 42km를 한번도 안쉬고 뛰어야 가능하다).



2008년 세컨드 레이디가 돼 일정이 빠듯해지고, 나이도 들어 풀코스를 더 완주한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이미 60대에 접어든 세컨드 레이디 시절에도 러너스월드와의 인터뷰에서 1주일에 5번을 달리고, 1마일(1.6km)을 10분에 뛰는 페이스를 유지한다고 밝혔을 정도로 그는 ’강한 여자‘이다.

질 바이든 여사가 2013년 4월25일 보스턴 마라톤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자신의 런닝화를 걸고 있다/사진=백악관 유튜브 캡쳐질 바이든 여사가 2013년 4월25일 보스턴 마라톤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자신의 런닝화를 걸고 있다/사진=백악관 유튜브 캡쳐
풀코스 4시간30분 완주 런너, 남편 유세땐 시위자 온몸으로 막아낸 '경호원' 역할도
퍼스트레이디가 되자 한 지지자는 ‘닥터 바이든’ 트위터에 “다시 강하고 지적인 지도자(a strong, intelligent leader) 퍼스트 레이디로 맞게 돼 기쁘다”고 환영했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에)그런 역할을 해줄 여성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괴로웠다는 그는 이어 “(여성으로서)미셸 오바마는 따라가기 벅찼지만, 질 바이든은 여성들이 그 자체로 따를 수 있는 롤 모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의 한 언론은 선거 직후 질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를 조명하며 ‘조 바이든의 뒤에 있는 강한 여성들’이라는 제목을 달았다(2020 US election: These are the strong women behind Joe Biden).

그는 강력한 정신적 지지대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9살 연상의 바이든을 훌륭하게 지켜낸 경호원 역할을 해냈다. 지난 4월 로스앤젤레스의 바이든의 선거유세장에서 단상으로 뛰어올라 바이든에게 돌진하는 채식주의 시위자 앞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약 10초 뒤 또다른 여성시위대원이 바이든을 향해 뛰어들자 이번에는 시위자의 팔목을 잡아채 밀어냈다. 남편을 육탄방어하는 바이든 여사와 한걸음 물러서서 놀란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는 바이든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바이든 여사 스스로도 ‘strong’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자라면서 나는 두가지를 성취하고자 했다-하나는 부모님이 그랬듯 강고하고(strong) 서로 사랑하며, 웃음이 넘치는 결혼생활이다. 나머지 하나는 커리어(career)이다. 바이든을 만나 두 가지는 물론 더 많은 것을 이뤘다”고 썼다.

2020년 4월 로스앤젤레스의 바이든의 선거유세장에서 바이든 여사가 바이든에게 돌진하는 채식주의 시위자를 제지하고 있다. 사진=사진작가 패트릭 폴른 트위터 캡쳐https://twitter.com/pfal/status/1235078176306425857/2020년 4월 로스앤젤레스의 바이든의 선거유세장에서 바이든 여사가 바이든에게 돌진하는 채식주의 시위자를 제지하고 있다. 사진=사진작가 패트릭 폴른 트위터 캡쳐https://twitter.com/pfal/status/1235078176306425857/
스스로 힘으로 커리어 쌓은 교육 전문가, 지금도 영어 과목 교편
그는 뉴저지주 조그만 시골마을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다.

29세때인 1970년 꽤 유명한 운동선수 출신 사업가와 결혼했지만 4년뒤 이혼한다. 15세때부터 식당종업원 같은 아르바이트를 했던 바이든은 전문대에서 패션마케팅을 전공했지만 한 학기만에 그만뒀다. 지역 에이전트 소속으로 모델일도 하는 등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델라웨어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교통사고로 부인과 어린 딸을 잃고 홀로 된 바이든을 미팅에서 만나 1977년 결혼한 뒤, 81년에 딸을 낳을 때까지 공립학교 기간제 교사에서 시작해 영어 정규교사 커리어를 쌓았다. 임신기간중 웨스트체스터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땄다.

81년 출산과 육아 때문에 2년을 휴직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심리치료 병원과 공립학교,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계속 교편을 잡았다. 2009년 이후에는 워싱턴 D.C의 노던 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에 재직중이다.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1987년에는 영문학 석사, 2007년엔 델라웨어 대학 영문학 박사 학위를 땄다.

2008년 남편이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 출마했을때도 주말에만 유세에 참석했다. 부통령 부인 시절에도 경호팀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부탁해 ‘세컨드 레이디’인줄 모르는 학생들도 많았다. 이름이 같은 이유를 물어보면 웃으면서 ‘친척’이라고 넘어갔다고 한다.

/사진=질 바이든 인스타그램 캡쳐/사진=질 바이든 인스타그램 캡쳐
백악관서 출퇴근 예정 '더블잡 퍼스트레이디, 더블인컴 퍼스트패밀리' 첫 등장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야 마지못해(?) 한 학기기 휴직하고 선거운동에 나섰을 정도로 남편과 자신의 삶을 철저히 구분했다. 그는 특히 지역 주민 재교육 기능이 강한 커뮤니티 칼리지 교육을 중요시한다. “내가 그들의 삶에 변화를 줄 수 있어 기쁘다. 특히 커뮤니티칼리지를 통해 학업에 복귀, 전력을 다해 학위를 따는 여성들을 사랑한다”.

교육자이자 교육전문가인 바이든 여사가 퍼스트 레이디만 아니라면 교육부 장관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암웨이 그룹의 맏며느리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액기부자로 교육부장관 짜리를 꿰찬 벳시 디보스 현 교육부 장관에 대해 강경하게 날을 세웠다.

바이든 당선자는 디보스 장관이 코로나 사태 재확산에도 불구하고 2학기 정상등교 결정을 내리자 자신에게 아내가 “당신이 가장 먼저 할 일은 공공교육 전문가로 현장 수업경험이 있는 사람을 교육부장관으로 뽑는 것이라고 수도 없이 이야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바이든의 당선이 확실해지자 며칠전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당선인측 대변인을 통해 명확히 밝혔다. 경호원들은 피곤하겠지만 첫 ‘더블 잡’ 퍼스트 레이디, 더블인컴 퍼스트 패밀리‘의 모습은 신선한 선례가 될 듯 하다.

강인한 체력, 여성 독립심 도움...어려서부터 남녀 구별 없는 미국의 커뮤니티 체육
건강한 육체와 강인한 체력은 남녀를 떠나 주체적 삶의 기본이지만 오랫동안 강인함보다는 ‘부드러움’을 여성성으로 주입받아온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럴 수 있다.

굳이 호신무술이 아니더라도 많은 여성들이 운동을 시작한 뒤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나도 “격렬한 운동에 익숙해지니 밤길을 갈때도 덜 무섭게 되더라”는 말을 여성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은 남편이고 본인은 본인이라는 바이든여사의 확고한 주관과 자신감의 배경에는 강한 체력이 상당 부분 기여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무 때문에 미국에 체류했을 때 가장 부러웠던게 커뮤니티와 학교마다 활성화돼 있는 체육활동이다. 아동시절부터 아이들은 계절에 따라 실내외 운동을 필수로 하게 된다. 여학생들도 똑같다.

초등학생이던 딸이 학교 소프트볼팀 대표 유니폼을 입고 방망이를 휘둘러 안타를 쳤을 때의 기쁨은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때보다 더했다. 동네 축구 대표로서 1년 내내 공만 쫓아다니다가 드디어 원정 경기에서 넣었던 한 골(비록 골 앞에 서 있다가 굴러온 공에 얼결에 발을 갖다 댄 것이지만)의 감격은 손흥민 헤트트릭에 비할 바가 아니다.

운동신경이 매우 뛰어난게 아닌데도 국내 중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중에 ‘운동권’으로 꼽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조정팀에서 고된 합숙훈련을 견뎌내고 전국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게 ‘올 A학점’ 받은 것보다 자랑스럽다. 딸 아이와 같이 하루종일 달리기하고 수영하고 보트타고 자전거를 탔던 기억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집 안팎 남자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 하다.

여학생도 어려서부터 구기 체력단련해야...체력장도 부활하자
우리나라도 지금은 남학생들이 가정시간에 뜨개질을 배운다. 좋은 일이다. 마찬가지로 여자 아이들에게도 어려서부터 체육시간에 축구 농구 소프트볼 같은 구기와 태권도 같은 체력단련운동을 가르쳐야 한다. 언제까지 여자애들은 피구하고 피아노만 배워야 하는가.
우리사회와 정치권 정책담당자들이 대학입시에만 정신을 팔고 논란을 벌일게 아니라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직접 김장 담그고, 맛깔나는 요리를 주변에 대접하는 자상한 퍼스트레이디도 좋지만, 딸 가진 아빠로서 앞으로는 ‘강한 여자’ 롤 모델을 더 많이 보고 싶다.
물론 여학생한테만 관심 갖자는 건 아니다.‘차별없는 학교 체육’을 정상화 시키자는 말이다. 입시와 관련없으면 교육이 안되는 현실을 감안해 중고대학 입시에 체력장 과목도 부활시키자. ‘강한 여자, 강한 남자’들이 넘쳐나는 나라가 건강한 나라다.
“체력은 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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