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스펙이 공항 청원경찰을?…취준생 앞세운 기득권 공세[50雜s]

머니투데이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2020.06.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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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50대가 늘어놓는 잡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사무 직렬의 경우 토익 만점에 가까워야 고작 서류를 통과할 수 있는 회사에서, 비슷한 스펙을 갖기는커녕 시험도 없이 다 전환이 공평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 글의 내용이다.

나는 이런 글을 올리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고공 스펙이라도 토익이 만점이라도 후배 기자로 뽑지 않을 것이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 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이 청원 글을 올린 이가 실제 취업준비생인지, 인국공이나 어느 공기업 정규직 노조원인지는 알 수는 없다. 나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순전히 내 생각이다(인국공이라고 쓰니까 ‘인공 시대’가 떠오른다. 이 사례를 빨갱이 마녀사냥에 쓰는 이들이 있어서 드는 선입견인지 모르겠다).



연봉 5000? 기존 정규직 일자리 뺏는다?…팩트 왜곡
인국공이 정규직 전환키로 한 1900여명은 보안요원, 이른바 청원경찰들이다. ‘사무직렬의 경우’가 아닌데, 사무직렬과 동일한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으로 전제하는 것부터 출발이 엇나갔다.

기존의 인국공 정규직 직원은 일반직과 안전보안전문직으로 나뉜다. 일반직은 서류전형에서 토익점수도 보고 필기에서 전공시험도 본다. 서류 필기 통과하면 영어면접도 있다.

안전보안직급은 서류전형에서 토익 점수를 보지 않는다. 고등학교 내신성적을 본다. 필기에 전공시험도 없다. 기본적으론 고졸 스펙 대상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규직 전환 대상 보안요원들은 이 두가지 직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취업준비생들이 ‘토익만점에 가까운’ 노력을 해서 들어가고자 하는 일자리를 뺏지도 않고, 시험치고 들어온 고졸자들의 ‘괜찮은 일자리’를 뺏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서연고(서울대·연세대·고려대) 나와서 뭐하냐, 인국공 정규직이면 최상위이다. 졸지에 서울대급 됐다. 너네 5년 이상 버릴 때 나는 돈 벌면서 정규직됐다” 어느 언론이 인용한 인천공항 오픈채팅방(아무나 익명으로 쓸수 있다)의 글이다. 이게 실제로 정규직 전환을 앞둔 보안요원이 썼을까? 아니면 이들의 정규직화에 불만을 품은 정규직 직원이 썼을 가능성이 높을까.

또 다른 글. “나 군대 전역하고 22살에 알바천국에서 보안으로 들어와 190만원 벌다가 이번에 인국공 정규직으로 들어간다. 연봉 5000 소리 질러, 2년 경력 다 인정받네요”

인천공항공사측에 따르면 보안요원의 평균 임금은 3570만원이다. 우리 사회에서 2년 경력 보안요원이 연봉 5000만원 받는다는게 상식적으로 말이 될까(직무상 위험을 감안해서 그렇게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보안요원들이 소속돼 있던 협력업체로 돌아가던 사업이익이 보안요원들 인건비로 추가돼 이들의 임금은 조금 오르게 되는 건 맞다. 하지만 공항공사 입장에선 이미 협력업체에 지급하고 있던 비용이다. ‘토익만점 수준’이 지원하는 일반직 사원의 초봉은 지난해 기준 4500만원이다.

(인천공항=뉴스1) 정진욱 기자 =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22일 오후 인천공항1터미널에서 기자회견을 예고한 가운데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정규직 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22일 인천공항 보안요원 1900여명을 정규직화 한다고 밝혔다.2020.6.22/뉴스1(인천공항=뉴스1) 정진욱 기자 =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22일 오후 인천공항1터미널에서 기자회견을 예고한 가운데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정규직 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22일 인천공항 보안요원 1900여명을 정규직화 한다고 밝혔다.2020.6.22/뉴스1


취준생 절박한 심리와 ‘불공정’에 대한 분노 이용한 기득권 지키기
청와대 청원인은 “알바처럼 기간제로 뽑던 직무도 정규직이 되고, 그 안에서 시위해서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 및 복지를 받는다”고 썼다.

공항 보안요원은 ‘알바천국’ 통해서 뽑는 자리가 아니다. 현재도 특수경비 교육을 두 달간 받고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이후에도 한달간의 직무교육(OJT)을 거친다. 이 기간은 알바기간도 아니고 전부 무급이다. 근본적으로, 공항의 안전을 담당하는 일은 공항공사의 핵심 업무이다. 이런 업무를 ‘알바처럼 기간제로 뽑던 직무’이기 때문에 정규직이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건 특권·귀족의식이다. 어렵게 시험쳐서 들어온 직원들은 지금도 출발부터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 안에서 시위해서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 및 복지를 받는다. 정직원 수보다 많은 이들이 정규직 전환이 된다니요’라는 대목이 청원인(이라고 쓰지만 기득권자라고 읽힌다)의 진짜 불안감일 것이다. 기존 직원(노조원)보다 많은 수의 노조원이 새로 생기면 노조의 주도권이 넘어가게 되고, 자신들의 몫이던 회사의 자원이 이들에게 쏠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인천공항 정규직 노조 측은 "직고용 추진은 고용안정을 바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실업자로 내몰고 인천공항 뿐만 아니라 타 공기업에도 심각한 노노(勞勞)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며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일방적 정규직 전환에 대해 헌법소원 제기 등 총력투쟁을 전개하겠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걱정 같지만 실은 정규직화 자체에 대한 반발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단체인 한국노총 산하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은 성명서를 통해 "보안검색 노동자들이 마침내 비정규직의 굴레를 벗었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에 올린 ‘정규직 전환 중단 청원’에는 2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취준생들의 절박한 심리와 ‘불공정’에 대한 분노를 이용한 기득권 지키기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피상적 정보에 기반한 감정적 반응들이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정권 때리기에 나선 보수 언론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노조의 기득권을 옹호하며 부정확한 게시물들을 그대로 퍼나른 효과도 있을 것이다.
불가능한 '비정규직 제로'…철옹성 철밥통 '정규직'체제, 고용약자가 피해
지금같은 형태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는게 옳다는 말은 아니다. 단순히 인천공항공사만의 사례이거나, 개개인들의 이기심과 무지라고만 몰아부칠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런 선동이 공감을 얻게 만든데는 정부의 책임이 있다.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른바 ‘비정규직 제로’라는 목표는 ‘선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정책이다. 고용유연성과 이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안전망논의가 함께 논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덜컥 제시한 ‘비정규직 제로’ 아젠다의 뒷감당이 쉽지 않다.

지금과 같은 경직된 고용과 임금구조 하에서는 경영악화와 이로 인한 재정부담, 노노갈등이 어디서든 나타날 수 밖에 없다. 공기업 뿐 아니라 민간기업, 나아가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을 모두 지금과 같은 ‘철밥통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유해한 꿈이다.

역으로 정규직을 모두 비정규직화 하자고 말하는게 차라리 현실적이다. 정규직의 처우를 지금의 비정규직처럼 열악하게 하자는게 아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구분 자체가 무의미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고용의 철옹성을 쌓는게 아니라 '동일노동 동일임금' '본질업무의 직고용' '성과보수 연동' 같은 근본원칙을 세우되 고용탄력성을 확보하는게 필요하다.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고용이 보장되고, 반대로 탈락하면 다시는 들어가기 힘든 그런 ‘정규직’으론 조직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고용탄력성·사회안전망·기득권양보…사회적 합의가 진보세력 과제
기업들은 탄력적 고용을 통해 경영효율과 안정성을 높이고, 새로운 구성원들의 진입 문턱을 대폭 낮출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고용안전 장치와 더불어 해고나 실업이 곧 죽음이 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고용보험이건 기본소득이건 고용안정 특별기금이건 탄탄한 안전망이 필수 조건이다.
물론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정부는 고용탄력성을 뒷받침하는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고, 기업은 고용탄력성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고용안정 재원으로 출연하고,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도 비정규직 내지 실업자들과 기득권을 나눠 갖는 사회적 타협과 제도화가 절실하다. 못할 것도 없고 다른 나라의 사례들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의 성향을 판별하는 기준이 몇가지 있다. 그중 고용과 관련해 고용유연성 확대에 찬성하면 보수, 고용안정성을 강조하면 진보라고 보는게 일반적일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친노조나 반노조냐에 따른 구분이다. 하지만, 부당하거나 과도한 기득권을 없애고자 하는 걸 진보라고 보는 관점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양극화된 노동시장에서 과도하게 보호받으며 진입장벽을 쌓고 있는 대형 사업장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의 진짜 약자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 들에게는 최대의 기득권 세력이다. 이들의 기득권을 약화시킴으로써 노동시장 약자들의 채용과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진보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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